누구나 다 공부를 잘 하고 싶어한다. 그래야 학벌 위주인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교육 시장은 1998년 29조원이며 이중 과외비는 14조원(한국교육개발원 ‘한국의 교육비 조사연구보고서’)이다.최근 헌법재판소의 과외 해금 결정이 내려지자 과외가 더 성행할까봐 우려가 많다. 학창시절 과외라곤 받아본 적이 없지만 학원강사 경험이 있는 서영석씨와 학창시절 과외를 받아봤던 김어진씨가 과외와 공교육의 현실, 대학의 위상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3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교육을 달리 보게 만들었을까.
_두 분이 서로 초면이시지요.
서영석= 어진군은 절 모르겠지만 저는 어진군의 책을 읽었습니다.
김어진= 책이 꽤 인기가 있어서 11만부나 팔렸다는데 출판사(둥지)가 망하는 바람에 계약금 200만원만 받고는 그만입니다(웃음).
_과외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김어진= 수학에 젬병이라 고2,3때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생 형에게 30만원하는 수학 과외를 받았습니다. 과외로 점수가 오르지는 않았고 “남들이 하는 것, 나도 하니까”하는 정신적 안정만 얻었습니다. 수능시험에서도 수학을 반 밖에 못 맞췄습니다.
서영석= 중·고교때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닌 적이 없습니다. 집안 사정이 넉넉치 못해 할 수가 없었어요. 할 필요도 없었구요. 학교 공부만 따라 해도 별 어려움을 못 느꼈습니다.
김어진= 대개 수석 입학자들의 소감을 보면 학교 공부에 충실했고 과외는 하지 않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성적이 중간 정도인 학생들이 과외를 받으면 성적이 좋아지니까 과외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서영석= 학원 교습의 효과도 비슷합니다. 저도 경희대 시험을 칠때 한 달을 공부했는데 처음 해보는 지리과목이 걱정이 돼서 학원의 지리강사에게 5분 강의를 들었는데 혼자서 1시간 공부한 효과가 나더군요.
요령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도 이같이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김어진= 고3때 학교에서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눠 보충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수업이 끝난 후 하루 2시간씩 하는 이 수업이 일반 수업보다 더 진지했어요. 비슷한 실력끼리 모이니까 선생님들도 가르치기 쉽고 저희들도 잘 따라간 거지요.
지금처럼 반 학생들의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데 무조건 함께 수업을 받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명문 사립고나 고교 입시를 부활하는 것이 오히려 공교육이 제자리를 잡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열반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부모님들이예요.
서영석= 그렇지요. 40~50명 학생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제일 못하는 학생까지 알아듣도록 해야 하는 하향평준화의 공교육 수업으로는 과외 욕구를 누를 수가 없다고 봐요. 물론 내 아이에게 과외를 시키겠냐고 물으면 저는 안 시키겠습니다만. 남의 힘을 빌어서까지 학벌을 따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_과연 과외가 어느 정도로 성행합니까.
김어진=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한 반에 10~15명이 과외를 받았던 것으로 알아요. 아침 보충수업에 자주 빠지시던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과외를 하셨던 것 같아요.
서영석= 제가 알기로는 지금도 현직 교사가 학생들을 학원 강사나 다른 교사에게 소개해주는 일종의 ‘브로커’역할을 합니다. 현직 교사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을 직접 가르치지는 않고 다른 교사와 학생을 바꿔서 가르치기도 하지요. 아주 성적이 처지는 학생보다는 대개 중상위권 학생들이 이같은 과외를 주로 받습니다.
_과외 해금 결정이 공교육을 붕괴시킬 것으로 보나요.
김어진= 현재처럼 계속 학교 수업이 부실하다면 과외 해금과는 상관없이 공교육은 무너질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과외 해금결정이 있기 전에도 과외할 사람은 다 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떠들썩한 것이 우습습니다. 과외를 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동일한데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만이 달라진 것이지요.
서영석= 학원에서도 보면 학생들이 더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도 물어요. 과외 해금 결정이 내려진 후 그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요.
_현재 공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서영석=제가 생각하기에는 교사의 자질이 큰 문제입니다. 특히 교사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자질을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지요. 요즘 남학생들 중에는 사대, 교대가서 5년간 병역특례로 근무하느니 차라리 2년간 군복무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니 실력있는 선생님이 나오겠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인 제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소원은 ‘제발 이번에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한 분이기를’이라고 바란답니다. 좀 심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만큼 실력있는 젊은 교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어진=또 학교 교육은 ‘공급자 위주’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 수요자인 학생들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두자는 것인데 예를 들면 조리고등학교나 대중예술고등학교 등 다양한 학교 형태나 한 학교 내에서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교육당국과 교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귀찮고 힘드니까 ‘수요자’를 무시한 획일적이고 일방적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서영석=안이한 교육정책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쉬워진 수능시험이 오히려 과외나 학원교습을 부추긴다면 믿겠읍니까.
김어진=고교 시절을 되살려보면 그 말이 맞아요. 성적때문에 대학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던 학생도 수능시험이 쉬워지면서 막판뒤집기를 노려 족집게 과외를 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정책입안자들은 ‘수능을 쉽게 내서 과외를 하지 않아도 대학을 갈 수 있게 하겠다’고들 하지만 책상머리에서 생각하는 구도일 뿐입니다. ‘고교장 추천제’도 문제예요. 수능시험과 다른 기준으로 학생들을 뽑자고 만든 제도인데도 역시 성적으로 학생들을 추천하잖아요. 그러면 수능시험으로 합격하는 학생들과 다른 점이 뭔가요.
_대학은 꼭 가야 합니까.
서영석=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이 꼭 필요하지요. 그러나 모두 다 가야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
김어진=부모님 세대보다야 약하지만 아직도 대학에 가야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강하지 않습니까. 선진국은 학벌우대가 우리 사회보다 더 강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 사회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대학을 나오지않아도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잖아요. 요즘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들은 많이 하면서도 동시에 대학은 필수, 대학원과 박사는 선택이라는 학력 인플레 현상도 함께 존재합니다.
_공교육의 개혁방안을 든다면요.
김어진= 학창 시절 가장 인상적인 교육방식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가르치신 책읽기와 일기쓰기입니다. 저는 피아노 컴퓨터 영어회화 과외를 받은 적이 없지만 지금 크게 후회는 안합니다. 장영주가 될 수 없는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계속 배우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다 부모의 만족감일뿐입니다. 공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학교에 오고 싶도록’ 해야 합니다. 과외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육이나 클럽활동을 제대로 한다면 문제가 많이 줄어들겠지요.
서영석=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봐요.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교는 입시부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국내·국제 사회의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경쟁에 면역이 되어있지 않으면 문제 아닌가요. 그러니 입시부담을 완전히 없앨 필요는 없어요. 대신 제대로 훈련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학생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려면 중고교의 과목을 확 줄여 꼭 필요한 기초과목만 공부하게 했으면 좋을 것같아요.
●서영석(徐永錫)
1965년 인천 출생. 부평동초등학교 부평동중 인천 선일고 졸업. 1983년 서울대 자연계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1986년 5·3인천사태로 1년6개월을 복역했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하고 10년간 학원강사로 일하다 1999년 경희대 한의대 입학했다. 부인 정경아(36)씨와 딸 하늘(9)이를 둔 학부모다.
●김어진
1978년 서울 출생. 홍익대부속초등학교 윤중중 여의도고를 졸업했다. 1997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할 당시 자신의 입시 경험을 담은 책 ‘어진이의 서울대 간신히 들어가기’를 펴내 화제를 모았다. KBS PD인 김성응(金聲應·54)씨와 주부 김정희(金正姬·52)씨 사이의 외아들이다.
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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