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 국도는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 포구까지 섬진강을 동쪽으로 따라 내려간다. 강 건너편에서 강을 따라 쫓아오는 길이 861번 지방도로다. 강을 따라 출렁거리며 바다 쪽으로 흘러내려오는 지리산의 연봉들은 점점 더 넓게 품을 벌려서 화개나루를 지나면 강의 굽이침은 아득히 커지고, 굽이침의 안쪽으로 넓고 흰 모래톱이 드러난다.산이 새 잎으로 피어나고 강물이 빛나서, 이쪽 길로 가려면 강 건너편 저쪽 길이 아깝다. 이럴 때는 이쪽 길로 강을 따라 내려갔다가 저쪽 길로 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된다. 구례에서 출발하는 자전거는 861번 지방도로로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화개나루에서 나룻배로 강을 건너서 화개동 골짜기와 악양골짜기로 들어갈 작정이다.
5월의 지리산 언저리와 섬진강 가를 자전거로 달릴 때, 억눌림 없는 몸의 기쁨은 너무 심한 것 같기도하고 살아있는 몸이란 본래 이래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강가에서는 마구 패달을 밟으려는 허벅지의 충동을 다스려가면서 천천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전거는 다가오는 숲과 뒤로 흘러가는 숲 사이를 강을 따라 달린다.
다시 숲에 대하여 쓴다. 피아골 계곡의 암자에서 차 한잔 나누어 마신 한 승려는 “온 산에 새 잎 돋는 사태 속에 깨달음이 있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알지만 거기에 가까이 갈 수는 없다. 이것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법명을 묻자 그는, 그런 걸 묻지 말고 새 잎 돋는 산이나 쳐다보고 가라고 한다. 다른 승려에게 물어보니 그의 법명은 법경(法耕)이었다. 법경은 많은 책을 쌓아 놓고 있는 젊은 승려였다. 그의 서가에는 유물론도 보였다. 차 잎을 너무 아껴서, 그가 준 차 맛은 차의 먼 흔적처럼 어렴풋이 비렸다. 법경의 성불은 아득해 보였으나 그가 부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새 잎 돋는 산이나 쳐다보고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5월의 지리산 숲은 온 천지의 엽록소들이 일제히 기쁨의 함성을 지르듯이 피어난다. 나무들은 제 본래의 색으로 피어나 숲을 이루고 숲들은 제 본래의 색으로 산을 이루어, 수많은 수종(樹種)의 숲들이 들어찬 지리산은 초록의 모든 종족들을 다 끌어안고서 구름처럼 부풀어 있다.
5월의 지리산 숲은 소나무, 차나무, 편백 같은 상록수의 숲과 새 잎이 돋아난 활엽수의 숲으로 대별된다. 상록수의 숲은 수종에 따른 색의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소나무도 새 솔잎이 돋아나지만, 소나무의 새 잎은 날 때부터 이미 강건한 초록색이어서, 소나무 숲은 봄에도 연두의 애잔함이 없다. 전나무의 새 잎은 연녹색이지만, 그 기간은 잠깐이고 전나무는 검푸른 녹색으로
봄을 맞는다. 화개 골짜기의 차나무 숲이나 선운사 뒷산의 동백나무 숲이나 화순군 동복면의 편백나무 숲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상록수의 숲은 짙고 깊게 푸르러서, 그 푸르름은 봄빛에 들뜨지 않는다. 상록수 숲의 푸르름은 겨울을 어려워하지 않는 엄정함으로 봄빛에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흰 눈에 덮인 겨울 산에서 상록수 숲의 푸르름은 우뚝하지만, 온 산이 화사한 활엽수들의 신록으로 피어날 때, 연두의 바다 속에 섬처럼 들어앉은 상록수의 숲은 더욱 우뚝하다.
5월의 산에서 가장 자지러지게 기뻐하는 숲은 자작나무 숲이다. 하얀 나무 가지에서 파스텔 풍의 연두색 새 잎들이 돋아날 때 온 산에 푸른 축복이 넘친다. 자작나무 숲은 생명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작은 바람에도 늘 흔들린다. 자작나무 숲이 흔들리는 모습은 잘 웃는 젊은 여자와도 같다. 자작나무의 잎들은 겨울이 거의 다 가까이 왔을 때 땅에 떨어지는데, 그 잎들은 태어나
서 땅에 떨어질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면서 반짝인다. 그 이파리들은 이파리 하나 하나가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바람을 감지하는 모양이다. 그 이파리들은 사람이 느끼는 바람의 방향과는 무관하게 저마다 개별적으로 흔들리는 것이어서, 숲의 빛은 바다의 물비늘처럼 명멸한다. 사람이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때도 그 잎들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그래서 자작
나무 숲은 멀리서 보면 빛들이 모여 사는 숲처럼 보인다. 잎을 다 떨군 겨울에 자작나무 숲은 흰 기둥만으로 빛난다. 그래서 자작나무 숲의 기쁨과 평화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불러 들일만하다. 실제로 숲에 대한 감수성이 깊은 북쪽 지방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죽어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영혼들은 복도 많다.
은사시나무 숲의 신록은 수줍고 또 더디다. 다른 모든 숲들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두터워져 갈 때, 은사시나무 숲은 겨우 깨어난다. 갓 깨어난 은사시나무 숲은 희뿌연 연두의 그림자와 같다. 멀리서 보면, 은사시나무 숲의 신록은 봄의 산야에 낀 안개처럼 보인다. 이 숲에서는 젖을 토하는 어린 아기의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나무가 싹을 내밀기 전에, 나무의 안쪽에 감추어져 있던 생명의 비밀을 생각하게 하는데, 그 비밀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은사시나무는 높고 밑둥은 굵지 않아서 은사시나무 숲은 숲 전체가 바람에 포개지면서 흔들린다. 은사시나무 숲의 이파리들은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일제히 뒤집히면서 나부껴서, 은사시나무 숲은 풍향에 따라서 색이 바뀐다.
오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숲들의 신록은 거칠게 싱싱하다. 그 숲의 이파리들은 아름다움의 정교한 치장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여름의 검푸른 초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 숲의 이파리들은 억센 사내들의 힘줄같은 잎맥을 가졌다. 이 숲은 봄의 현란함이 아니라 여름의 무성함 속에서 완성되는, 넓고 힘센 활엽수들의 숲이다. 이 숲에서는 짙은 비린내가 나고 바람이 불 때 마다 폭포 소리가 난다.
섬진강을 따라서 남쪽으로 자전거를 달릴 때, 신록의 산들과 여러 빛깔의 숲들이 강물 위에 거꾸로 비쳤다. 성불하지 못한 산속의 젊은 승려는 결국 갈 수 없는 숲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었다. 숲의 아름다움은 아직은 너무 멀다. 모래톱 물가에서 혼자 사는 왜가리 한 마리가 물음표(?) 모양으로 서서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동포구 재첩국
재첩국은 하동포구를 대표하는 국물이다. 비싸지 않고 요란하지도 않은 음식이 한 지방을 대표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하동의 재첩국, 안동의 간고등어, 충무의 김밥, 의정부의 부대찌게, 나주의 곰탕 등이다.
하동 재첩국은 순결한 원형의 국물이다. 여기에는 잡것이 전혀 섞여있지 않다. 이 국물이 갖는 위안의 기능은 봄의 쑥국과 거의 맞먹는다. 이것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 국물이다. 이런 국물은 흔치 않다. 재첩은 손톱크기 만한 민물조개다. 재첩국은 이 조개에 소금만 넣고 끓인 국물이다. 다 끓었을 때 부추를 잘게 썰어 넣으면 끝이다. 그 맛은 무릇 모든 맛의 맨바닥 기초의
맛이다. 맺히고 끊어지는 데가 전혀 없이 풀어진 맛이다. 부추가 그 풀어진 맛에 긴장을 준다. 오장을 부드럽게 해주고 기갈을 달래준다. 옛 의학서에는 재첩이 삶에 기진맥진한 사람들의 식은 땀을 멈추게 해준다고 적혀 있다. 푸른 부추가 뽀얀 국물 속에 우러나서 그 국물의 빛깔은 새벽의 푸른 안개와도 같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 모래 속에서 산다. 재첩은 가장 작은 조개다. 강바닥을 깊이 긁어야 잡을 수 있다. 재첩은 봄부터 잡기 시작한다. 하동포구 주민들은 4월 하순부터 재첩을 잡기 시작한다.
함지박을 밀고 강 속으로 들어가서 바닥을 긁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가장 작은 조개 속에 가장 깊은 맛이 들어있다. 조개 몇 마리와 물과 소금이 그 국물의 형식의 전부다. 재첩국물은 삭신의 구석구석으로 스며 들뜬 것들을 가라앉힌다. 재첩 국물 속에도 작은 숲이 들어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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