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이 레이첼 카슨(Rachel Louise Carson·1907-64)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소식이다. 카슨은 미국 해양생물학자·작가로 농약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환경운동을 촉발한 책으로 유명한 ‘침묵의 봄’(1962)을 썼다. 카슨은 또 최근 미국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중요인물 100명 가운데 꼽히기도 했다. 그녀는 ‘과학자와 사상가’부문의 20명 가운데 하나였다.1932년 대학을 졸업하고 우즈홀 해양생물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때는 메릴랜드대학 교수였던 카슨은 ‘바다 바람 아래’(1941) ‘우리 둘레의 바다’(1951) ‘바다의 끝’(1955) 등 과학대중화 서적으로 호응을 얻은 끝에 ‘침묵의 봄’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원래 카슨은 수줍고 가냘픈 문학소녀로 고등학생 시절에는 시인을 꿈꾼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자연계의 신비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동물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게 된 지식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우리 둘레의 바다’로 그녀는 명성과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저술에만 몰두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평생 그녀가 사치로 누린 것이 있다면, 좋은 망원경 하나와 바닷가 오두막집 한 채였다. 그녀는 거기서 화초밭을 가꾸고 새를 관찰하며 저술에 정력을 모두 바쳤다.
“이상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새가 몇 마리 보이기는 해도 그 새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제대로 날지를 못했다. 새소리 없는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오직 고요함만이 한때 새소리로 시끄럽던 들판과 숲과 늪을 덮기 시작했다.” 1942년 이후 미국은 DDT를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농약의 남용으로 벌레가 마구 죽었다. 먹이가 사라지면서 새들 역시 살아갈 수 없어 ‘침묵의 봄’이 찾아오고 있음을 그는 이렇게 경고한 것이다.
1964년 4월15일자 ‘뉴욕 타임즈’는 아주 길게 그녀를 추도했다. 만약 그녀가 동물학 연구에만 몰두했더라면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사상가 20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되었을까? 오늘 한국의 과학자들은 계속 과학만 열심히 연구할 것인가?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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