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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25) 하창수의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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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25) 하창수의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입력
2000.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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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의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누구는 영장이 다시 나와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다고 했다. 누구는 논산훈련소에서 헉헉거리며 구보하다 잠을 깨곤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나는 갔다왔다”며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제대증은 또 어디로 갔는지. 그렇다고 특별히 군대에서 죽을 고생을 한 것도 아닌데. 벌써 제대한 지 15년이 지나 아득한데. 그 이후의 기억들도 잃어버렸는데.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죽음의 공포’와도 같은 것이다. 선택의 부재, 대안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망각의 강’으로 띄워 보내고 싶을수록, 괄호 안으로 묶어 버리고 싶을수록, 눅눅하게 달라붙은 기억의 그림자들.

우리는 그것을 술자리에서 침을 튀기며 영웅담처럼 반복하거나, 아예 모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든가, 아니면 하창수처럼 ‘더 이상 두었다가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부패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지는 정신적 쓰레기’이기에 위악적으로 배설해야만 그 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그 기억이 늙어 이제 더 이상 군인일 수 없을 때까지. 그때가 불혹이라면 이제 하창수(40)도 그 지점에 와 있다.

군번 13274191, 이름 하창수(소설에서는 김영호), 육군 병장, 병과 보병. 복무기간 1982년 5월-1984년 7월. 26개월의 세월은 이렇게 간단히 몇 줄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몇개의 숫자와 글자 속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기억의 그림자가 숨어 있는가. 논산훈련소에서 지켜 본 총기오발사고를 낸 일병, 뺑소니로 잡혀 온 운전병, 여호와의 증인의 공개 재판, 말단 소총수로 중부전선(강원 화천) 최전방 철책선에서 목격한 수많은 죽음들, 수없이 쇠녹처럼 붉게 물들었다 진 저녁노을. 세상은 그것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한다. 손을 흔들고 부대를 나오는 순간 그 기억을 모두 지우라고 새 주민등록증은 이 짧은 기록조차 없애버렸다.

하창수의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은 그 짧은 기록 속에 숨어있는 긴 시간의 기록들이다. 10개의 토막낸 시간 위의 사람들은 군대란 집단이 그어놓은 선을 따라 걷다 통과제의처럼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그 선을 비껴나 비틀대거나 소리를 지르다 쓰러지고, 다시는 돌아서지 않았다.

사생아인 ‘겨울병사’인 신병은 전방근무 부적격자로 후방으로 전출가 산에 목을 매고, 그를 아끼던 통신병은 응답없는 전화기에서 그를 볼러본다. ‘유해의 봄’에는 제대를 일주일 앞둔 병장이 월북기도 군인을 사살하고는 ‘헛 것을 봤다’며 고개를 젓는다.

신석기시대 돌을 구한다고 계곡을 다니다 지뢰를 밟아 죽은 인류학을 전공한 공병대 이등병의 시체는 ‘춘흔’으로 남고, 군견병은 자신의 개가 동기를 물어 죽이자 ‘빙하(氷夏)’처럼 말을 잃어버렸고, 폭탄사고로 아이를 잃은 선임하사는 ‘이월의 하늘로 날아간 파랑새’(술집 여자)를 찾아가기 위해 군복을 벗어버렸다. 위병소 하사는 애인이 변심했다고 ‘멀고 먼 내일은 봄’이라는 사실이 무서워 자기의 턱을 총으로 날려버렸다.

전체주의에 저항하거나 절망하는 그들의 몸짓. 그것을 전체주의는 ‘반항’이거나 ‘사고’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하창수는 보았다. 그들에게서 자기존재에 대한 절망적 사랑을. 끝내 돌아서지 않는 사람의 쓰라림을. “씨팔”이란 참으로 쓸쓸한 낱말을. 하창수의 소설은 그 절망과 쓰라림과 쓸쓸함으로부터의 탈출기가 아니다. 거기엔 눈을 부릅 뜬 감시자도 없었고, 우둔한 방조자도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스스로 그곳에서 인간의 너무나 깊은 상처를 응시하고자 했다. 마음의 진동을 통해 가장 충격적인 젊은 죽음을 본다. 철저히 개인이 지워지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낫다는 짧고 강렬한 경험.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 없고, 개선의 방법은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처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적으로 넘나들며 그에게 군대는 “절망을 절망답게 느낄 수 있는 최초의 단계”였다.

이런 의식의 과장이나 민감함은 그의 전체주의에 대한 기질적 거부감과 서정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것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다른 곳에서 그 모순을 보면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 상처가 살아나 아프게 저항한다.

그 저항은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절망한 세월에 대한 저항이고,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그는 이를 “문학적 행복”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의 소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잊고 싶은 끔찍한 그 기억과 고통이 아직도 남아있고, 앞으로도 수많은 젊음을 돌아서지 않게 하리란 두려움 때문이다.

그가 근무했던 강원도 화천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가까웠다. 18년이란 세월이 그곳을 작고 가깝게 만들었다. 전방 군부대 마을은 어디나 같다.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노래방, 여관, 술집이 있고 휴가병 이름표를 달아주는 세탁소가 있다. 노란 완장을 찬 전령이 시간을 때우듯 어슬렁거리며 나오는 부대 앞에 써놓은 ‘형님처럼, 아우처럼’이란 구호가 봄비를 맞고 있다. 유난히 사랑(전우애)을 강조해 오히려 사랑이 메말라 보이는 병영 뒷산에 진달래가 유난히 붉다.

■하창수의 병사소설들

하창수는 ‘병사’ 소설이라고 했다. 그 병사들을 짓누르는 것은 전쟁이 주는 죽음의 공포가 아니다. 개인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에 대한 절망. 그들은 그 절망이 곧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젊은 시간을 보낸다. 머리를 눈 속에 처박아 얼어붙게 하고는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란 없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이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음을 하창수는 보았다. 그래서 어느날 강보에 싸여있다 내팽개쳐진 아이는 ‘장난과 허위와 정신의 전진이 허락되지 않는 나날에서 오래 슬퍼하지 않는 일과 입 다무는 것, 그리고 눈 감아주는 일’을 익힌다. 그럴수록 ‘스물다섯 살의 여윈 몸과 거기에 달라 붙어온 눅눅한 기억의 그림자’들. 어떤 몸짓으로든 반항하거나 절망하고,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돌아서지 않은 사람들’.

하창수는 그들의 기억으로 인간 존재와 상황에 대한 내면을 탐구했고, 기억을 통해 그것을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을 치유했다. 그 기억은 데뷔작 ‘청산유감’(1987년)에서 80년대 중반의 대학가의 반정부투쟁조차 전체주의의 냄새를 맡게 하였고, 억압적 상황을 오히려 시인인 ‘병사’(88년)가 지피(GP)너머로 사라지는 은유와 몽상을 낳았다. 하창수에게 전체주의의 거역할 수 없는 벽은 그러나 ‘더 깊어지는 강’(89년)이 돼 우리 노동현실에서조차 극복할 수 없는 대상으로 깊어졌다.

‘암묵과 변설’(90년)은 그것에 반발하는 군견병의 이야기이다. 그는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에서 월북하는 동기생을 잡은 그 병사였고, 그의 침묵과 ‘개소리’와 개를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군대조직과 권위에 침을 뱉는다. 하창수는 무서운 것이 싫어서 ‘철의 언어’(91년)로 총기오발로 영창에 들어간 병사를 이야기하고, 말로 표현하기 무서운 의식의 잔해를 확인하기 위해 불발수류탄을 수거하다 자기 대신 죽은 한 병사를 기억하고, 군사재판에 회부된 운전병과의 운명적 사슬을 확인한다.

그 군견병이나 GP로 사라진 시인이나, 군사재판을 받는 운전병과 ‘젊은 날이 없다(92년)’는 여호아 증인, 그리고 그들을 고통과 연민 속에 몰아넣은 사슬은 하창수의 병사소설에서 순환고리를 이루며 무서운 의식의 잔해를 남긴다.

그의 소설은 그 공포감과 공포감을 느껴야 하는 자괴감을 끊어 버리려는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은 문학평론가 하응백씨의 말처럼 그가 기질적으로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한 계속된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전체주의를 만난다. 군대도 분명 존재론적으로 불필요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한다. 이게 인간이구나 느껴때 나는 슬프다.”

●하창수

■1960년 포항 출생, 영남대 경영학과

■87년 중편 ‘청산유감’(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장편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91년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 ‘젊은 날은 없다’ ‘알’ ‘허무총’ ‘그들의 나라’,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이외수와 공동집필한 엽편소설집 ‘껄껄’ 등

화천=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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