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먹을 대상이 닭인지, 꿩인지도 모른 채 잡을 방법과 요리법을 따지는 꼴이다.”(모 통신업체 간부) “업체별 사업권 획득전략과 논리가 국내 통신업계 발전을 위한 장기 비전을 압도, 기술개발 결집력이 분산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국내 정보통신업계가 ‘황금알을 낳는 또하나의 거위’로 지목, 10조원 가까운 시설투자비도 불사할 정도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이 정부의 불투명한 정책으로 혼선을 빚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7월 “2002년 월드컵 개최에 맞춰 IMT-2000 상용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 아래 2000년 6월까지 사업자수와 선정방식을 확정하고 9월까지 사업신청을 받아 12월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9개월여가 지나도록 여론수렴을 위한 공청회는커녕, 사업자수 등 기본적인 사안에 대한 내부 방침조차 정하지 못해 인적·물적 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다가 사업자 선정이 졸속으로 추진돼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던 ‘PCS 사태’의 재판(再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업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IMT-2000 서비스의 개념도 제각각이다. 한편에서는 IMT-2000을 ‘이동전화 서비스의 연장’이라고 보고 기존 이동전화업체들을 중심으로 사업자가 선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동전화와는 전혀 다른 신개념의 서비스’인 만큼 신규사업자를 우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사업연기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동기(미국)와 비동기(유럽 일본) 방식이 대립하고 있는 기술표준 문제와 관련, “기술표준을 서둘러 확정할 경우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유럽 업체들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며 “가능한 한 표준 확정을 늦추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도입 당시 퀄컴과의 협상에서 밀려 과도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던 전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표준 문제는 물론, 공론화가 필요한 사안조차 쉬쉬하고 있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96년 PCS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말썽도 결국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이 없었던 데서 비롯됐다. 정통부는 당시 3차 최종 선정방식을 추첨제로 하려다 여론의 반발에 부딪치자 뒤늦게 심사제를 도입하면서 무리한 심사기준을 적용, 특혜 시비를 자초했다.
더욱이 IMT-2000사업은 향후 국내 통신업계 판도변화의 분수령이자 우리나라가 세계적 통신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말썽이 일 경우 PCS 사업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김영세(金泳世)연세대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쟁점이 많고 논란이 큰 사안일수록 공론화시켜 하루빨리 사회적 컨센서스를 이끌어내야 한다”면서 “정부가 정치적 논리와 일정에 쫓겨 1회적인 공청회 개최 등 요식행위만 거친 채 사업자 선정을 강행할 경우 제2의 PCS사태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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