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교육부장관이 27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교육체계 혁신방안 가운데 자립형 사립고교 제도 도입안은 중등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자립형이란 학생 선발권, 교육과정 편성권, 등록금 책정권 등을 사립학교에 되돌려 주겠다는 의미다.물론 고교평준화 정책의 골격을 유지하는 선 안에서 허용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4반세기 이상 공립학교와 똑같은 통제를 받고 있는 사학에는 가뭄에 단비보다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사립학교는 육영사업에 뜻을 둔 교육 독지가나 종교단체 등이 나름대로의 교육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한 특별 교육기관이다. 사회통념과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원하는 학생을 뽑아 그 이념의 실현을 위한 교육과정을 편성케 하고, 운영상의 자율성도 보장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사립학교들은 1974년 고교평준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 세가지 권한을 빼앗겨 공립학교처럼 운영되어 왔다. 등록금은 공립학교와 같고, 학생은 학구에 따라 배정받으며, 교육과정마저 똑같으니 사학의 특성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겠는가.
공립학교와 같은 등록금으로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게 되자 정부는 교사들의 인건비를 보조해주고 있으나, 실험실습비 시설비 같은 교육사업비는 공립학교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경험 많고 실력 좋은 교사들은 일찍부터 공립학교로 옮겨가고, 학교시설 등 교육환경은 갈수록 피폐해져 수요자들에게 기피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비가 새는 교실, 냄새나는 화장실, 식당이 없어 교실에서 점심배식하는 학교에 가고싶은 학생이 있겠는가. 전체 고교의 60%가 넘는 사립고교가 이렇게 영락해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교육수준의 저하로 이어진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그런데 이 제도 도입의 방식이 시행의지를 의심케 한다. 교육부는 2003학년도부터 수도권과 광역시 이외의 지역 사립고교 가운데 시범학교를 정해 자율 사립고교를 시범운영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전국에 확대적용하겠다고 한다.
사립학교의 대다수가 대도시에 몰려있는데, 시골 외딴 곳에 있는 학교를 시범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발상이다.
자립형 사립고교 방안은 교육부가 97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해 온 약속이다. 등록금 책정권을 준다지만 상식선을 넘는 액수를 바랄 학교도, 그것을 수용할 학생도 많지 않을 것이다. 사립학교가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21세기를 이끌어 갈 다양한 인재양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