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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임문순교수-최재천교수의 과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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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임문순교수-최재천교수의 과학이야기

입력
200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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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졸업자 중 무작위 선정된 23명 중 2명만이 여름이 겨울보다 더운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해답은 ‘여름에 태양이 더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 여름철 북반구에서 빛을 받는 각도가 직각에 가깝기 때문이다.대답 못한 21명의 슬픈 무지-신이여 하버드대학교입니다!-는 그들의 상실이다.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레더맨은 유머 충만한 책 ‘신의 입자’(에드텍 발행)에서 대중의 과학수준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떤가. 과학은 어렵고, 공식은 경악스러우며, 전문가란 다른 세상 사람이 아닐까? 평생을 거미연구에 바친 거미박사 임문순교수와 개미 이야기를 소설보다 재미있게 써내는 최재천교수는 “과학은 힘이며 그리고 의무”라고 했다. 두 교수는 21일 제1회 대한민국과학문화상(도서부문)을 공동수상했다. 처음 만난 두 교수는 대뜸 의형제부터 맺었다.

임문순=학문적 깊이나 인간성이나 최선생 참 존경하오. 쓴 책 잘 읽었어요. 개미에서 인간적 사회성을 얼마나 잘 짚어내는지 그걸 보면서 내 꼭 마음먹은 게 있어요. 나 8월이면 정년퇴임이오. 하지만 앞으로 10년은 안 뛰겠소? 나와 함께 연구의, 그리고 과학 대중화의 형제가 됩시다. 오늘 나하고 의형제 맺을 거요, 안 맺을 거요?

최재천=연배로 봐서 감히 의형제라뇨?(최교수는 임교수보다 19년 아래다)

임문순=최교수 늘 겸손해 보여 좋아. 요즘 방송(최교수는 요즘 EBS ‘세상보기’에 출연중이다)에서 필드재킷 입고 강의하는 걸 보면, 미안한 소린지 모르겠소만, 젊은 나를 보는 것 같아. 열아홉 차이면 뭐 막내동생 뻘이구만. 내 퇴임하면 청주에 거미연구소 하나 차릴 생각이요. ‘거미방’이라고나 할까. 최교수가 자문위원장을 맡아주시오.

-두 분은 오늘 첫 만남이지만 ‘대중을 위한 과학책 쓰기’에서 필연적인 만남인 것같습니다. 과학의 대중화가 왜 중요한 걸까요.

최재천=외국 과학교양서를 번역하다 보면 물타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 대중이 이걸 이해할까 싶어 군더더기 설명을 덧붙이는 거죠. 일반인의 과학수준이 격차가 난다는 이야긴데 이게 곧 국력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비과학적 사고, 행태가 만연해 있습니까.

임문순=과학의 안방문턱 넘기라는 이야기 있죠? 더 중요한 건 부엌 문턱을 넘는 일입니다. 과학대중화의 첫번째 대상은 2세를 키우는 주부들이어야 합니다. 그나마 거미, 개미는 보다 대중적인 소재지요. 예컨대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기는 무리인지도 몰라요.

최재천=하지만 일반인이 모를 거라고 해서 입을 다물거나 대충 말하는 것은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저질화입니다. 현대인은 과학에 대해 알 ‘의무’가 있습니다. 과학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원칙이 통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듯 과학의 언어로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배워야 합니다.

-개미와 거미가 두 분의 영혼까지 사로잡은 매력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요.

최재천=개미 대가의 숲이랄 수 있는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하며 자연 개미에 빠져들게 됐지만 사실 개미보다 재미난 동물이 없습니다. 개미사회엔 왕도 있고 국가도 만들죠. 농업과 낙농을 하고 도둑놈, 강도, 노예도 있습니다.

대권주자의 싸움, 대량학살까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벌어지거든요. 사실 저는 문학도를 꿈꾸다 동물학과에 진학했지만 생물학을 공부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거든요.

임문순=농생물학과에 들어가서 농약공해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길이 거미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응용연구에 앞서 우리 거미를 조사하는 데에만 20여년이 걸렸지만. 거미는 인간에게 이롭고 배울 점이 많아요. 자기 줄을 걷어먹는 새똥거미는 인간보다 검소하고 자기 몸을 새끼 가 파먹게 하는 염낭거미의 모성애는 인간보다 눈물겹습니다. 그러고 보니 개미거미도 있어요. 개미와 비슷한 모양의 거미로 개미 무리 속에 섞여있다가 배고프면 슬쩍 한 두마리씩 잡아먹습니다.

최재천=열대지방의 깡충거미나 노린재과 곤충 중에는 개미처럼 허리가 잘록한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 있습니다. 개미는 화학적 언어 즉 페로몬이라는 분비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비슷한 분비물을 만드는 딱정벌레도 있습니다. 딱정벌레 애벌레는 개미 굴속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지요.

-개미와 거미를 통해 인간세상을 관찰하고, 많은 철학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두 분 스스로 인간세상에서 연구하하고 살아가기는 어떻습니까.

임문순=부끄럽지만 나는 여태 정부 연구예산 한 푼 쓴 적 없습니다. 그거 받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들고 행정절차가 복잡한지. 연구는 언제 합니까?

최재천=사실 임교수님같은 분께 꾸준히 연구비가 지원됐다면 지금보다 10배는 큰 업적을 낳으셨을 겁니다. 이런 기초연구는 큰 연구비가 드는 건 아니거든요. 외국의 경우 간소하게 연구비를 딸 수 있는 제도가 많아요.

임문순=그래도 내가 아내는 잘 얻었소. 내 돈 써가며 연구한다고 잔소리 한번 없었거든. 이번에 상을 받는다니까 아내가 뭐라는지 아십니까? 상금 1,000만원은 모두 거미연구소에 넣으라고 합디다.

최재천=지난 겨울 일본에서 강연을 하며 머물렀는데 동경대 교수가 도쿄 시내의 아파트를 빌려주더군요. 웬 아파트냐고 했더니 과학교양서 2권을 쓰고 받은 인세랍니다. 우리는 좋은 과학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문을 닫을 판입니다. 지금도 책을 쓰고 있는데 과학도서로 낼지, 인문도서로 낼지 출판사와 씨름 중입니다. 같은 책이라도 인문도서면 판매부수가 훨씬 많은 게 현실이거든요. 저는 앞으로 ‘전국민 과학책 1권 사기’를 주창할 것입니다.

●임문순(任文淳)교수

1935년 충남 보령생. 건국대 식량자원학과 교수. 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진흥청에 재직할 때부터 농약은 아편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1977년 거미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이후 한국의 모든 거미를 만나왔다.

매달 지역을 정해놓고 백령도 흑산도를 뺀 전국 450여곳을 돌았다. 값을 깎지 않고 여관에 묵은 적이 없고, 기차 배 트럭 경운기까지 얻어타지 않은 것이 없다. 20여년의 연구결실을 모은 책 ‘한국의 거미’와 ‘한국의 고유거미’에는 국내 서식하는 거미 603종이 집대성됐다. 부인은 그의 가장 든든한 연구후원자.

●최재천(崔在天)교수

1954년 강원 강릉생. 문학도를 꿈꾸었으나 동물학과(서울대)에 진학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후 지금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고등학생 시절 솔제니친의 수필 ‘모닥불과 개미’에서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에서 도망치지 않고 바둥거리며 죽어가는 대목을 읽은 것이 자신이 과학이라는 모닥불 속에 던져진 시점으로 기억한다.

개미 등 사회성 곤충, 거미, 까치와 조랑말의 사회구조 및 성의 생태, 박쥐 등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두뇌의 진화 등 동물행동학과 사회성의 진화를 연구한다.

● 거미는? 왕거미 거미줄의 지름은 0.0003㎜다. 같은 지름이라면 거미줄은 강철보다 강하고 나일론보다 질기다. 80㎏ 즉 어른 한명이 올라타도 끊어지지 않는다. 공기는 잘 통하고 수분은 막아주는 ‘꿈의 섬유’다.

이를 산업화하려는 연구가 진작부터 시도됐지만 아직 현실화하지 못했다. 1709년 파리과학학술원은 거미줄 1파운드(약450g)를 얻기 위해 66만마리의 거미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거미를 죽이면 불행이 찾아온다. 당신이 53마리의 파리를 잡지 않는 한.”(영국 민요). 거미가 해충을 잡아먹어 인간에 이롭다는 의미다. -대한민국과학문화상 수상작 ‘거미의 세계’(임문순 저·다락원 발행)

● 개미는? 전세계 개미 무게 총량은 인류집단 전체의 무게와 비슷하다. 개미는 인간보다 5,000만년 일찍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또 진디, 깎지벌레, 뿔매미 등을 가축으로 키우며 산다. 철저히 분업화했지만 조직변화에 융통적으로 대처한다. 미래형 경영법은 인간보다 한수 위다.

열대지역의 아즈텍개미는 다른 종끼리 합종연횡해 국가를 건설했다가 일개미가 불어나면 세력다툼 끝에 한 여왕개미가 즉위한다. 어떤 종은 일개미들이 여왕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자기 어머니를 물어죽이는 일도 있다.

알이 많은 여왕개미를 고르는, 철저한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대한민국과학문화상 수상작 ‘개미제국의 발견’(최재천 저·사이언스북스 발행)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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