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K고 2학년 장모(17)군의 하루는 오후5시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두 부분으로 갈라진다. 5시 이전의 학교 생활과 이후의 학원 생활. 장군의 ‘이중생활’은 지난해 2학기부터 시작됐다.보습학원을 통해 영어와 수학 과목을 보충하던 장군은 또래 학생들을 따라 학교 내신과 수행평가 교습까지 겸하는 종합 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군이 다니는 학원은‘K고반’‘C고반’등 강남 일대 학교별로 전문반을 두고 있는 이른바 ‘내신 대비’학원이다. 국·영·수뿐아니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가 되면 어디서 구했는지 그 학교 2~3년전 중간고사 시험지까지 보여주면서 특강을 한다. 매일 매일 쪽지시험을 치르고 산더미같은 숙제가 쌓인다. 학원 공부를 하려면 학교 수업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주말이라고 해서 쉴 수 없다. 다른 학원에 나가 영어와 수학 단과과목을 따로 듣고 있다. 지난 여름 방학때는 컴퓨터와 토플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장군은 “과외를 덜받는 편”이라고 걱정이다. “부모님이 과외해금 얘기를 듣고 영·수는 개인과외로 돌려야하지 않겠느냐던데요.”
장군에게 학교는 졸업장만 받으면 되는 곳이다. 공교육을 보충하는 사교육이 아니라 이미 사교육이 주(主)가된 지 오래다. 과외해금 소식은 이미 비틀거리고 있는 공교육에 가해진 ‘결정타’이다.
28일 아침 일선 고교 교무실에서는 조간신문을 받아든 교사들의 한숨소리가 메아리를 이뤘다. “한 반에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와 중학교 영어수준의 학생이 공존합니다. 이런 학교 수업과 몇명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과외수업 간에 승패는 이미 판가름나 있습니다.”
서울 D고 영어교사인 김모씨는 “학급당 40-50명인 현재의 교육환경으로는 과외를 능가하는 밀도있는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2002년 대입부터 특기적성 교육을 반영하고 수능을 등급화하는 등 입시제도가 달라진 만큼 공교육 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영판 다르다. 정부의 다짐을 믿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혼란한 시기에는 자칫 혼자 불이익을 당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너도 나도 학원을 기웃거리는 상황이라는 게 교사들의 얘기다.
사전준비도 없이 시작된 각 학교의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은 외면당한 지 오래고 도리어 초등학교때부터 예체능계 학원만 문전성시를 이루게 만들었다.
교사들은 과외 해금이 극명한 ‘교실 양극화 현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대포생’(대학포기생)들로 자처하는 학생이 지금도 한반에 10여명이 넘는 상황에서 과외허용은 고액과외 등 사교육에만 철저하게 매달리는 일부 상위권과 대학 ‘완전 포기생’으로 극명하게 갈라 놓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래저래 학교 교육은 철저하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식도 고액 과외를 시키고 싶은 게 교사들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서울 J고 정모교사의 푸념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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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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