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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고 "정보화·특성화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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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고 "정보화·특성화에 건다"

입력
2000.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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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바꾸자.”벼랑끝에 선 실업고가 활로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젠 바닥을 쳤다”“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상황인식이 절박하다. 서울시 실업고들이 신입생 모집에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미달사태를 빚은 것만 봐도 그 절박함의 깊이를 가늠해낼 수 있다.

한편에는 단순한 위기 대책을 떠나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세상이 오히려 실업고 부활의 호기”라는 적극적인 사고도 깔고 있다. ‘정보화’와‘특성화’를 무기로 ‘위기’를 ‘호기’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101년 전통의 서울 선린정보산업고에 지난해 9월 부임한 천광호(千光浩) 교장은 부임 일성을 교직원들에 대한 질문으로 대신했다.

“상품이 넘쳐나고 네트워크를 통한 마케팅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상업학교가 망할 이유가 있습니까?” 화폐 중심의 사무요원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던 기존 상업고 교육의 방향을 틀어 사회 변화에 맞춘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일갈이었다.

선린정보산업고는 내년부터 학과를 인터넷정보통신과와 웹운영과, 전자상거래과, 멀티미디어디자인과 등 4개 과로 개편하는 등 인터넷에 기반한 실무인력을 길러내는 것으로 교육목표를 바꿔잡았다. 교명도 ‘선린인터넷고’로 바꾸기 위해 현재 교칙 승인을 서울시교육청에 요청해놓은 상태. 교사들은 지난 겨울방학 내내 컴퓨터 전문학원에 다니며 먼저 전문능력을 갖추기 위해 땀을 쏟았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여상의 멀티미디어실에서는 매주 한번씩 일본 나고야의 세이료여상과 화상통신을 주고받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한국 인형 모델을 화상통신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의 오퍼를 E메일로 받고 신용장을 개설하는 등 사이버 상거래 실습이 한창이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입학하면 무조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처리도 이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진다. 위기 타개를 위해 일찌감치 전자상거래와 컴퓨터 전문인력 양성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대진전자공예고는 특성화만이 살 길이라며 컴퓨터설계제도(CAD)와 컴퓨터 그래픽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건축과 그래픽에서는 ‘대진’이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하겠다”“대학 졸업자보다 뛰어난 인재를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영란여자정보산업고는 올 2월 졸업생중 98%가 취업했고 그중 75%가 중소벤처업체에 취업했다. 학교측이 500여개 업체를 상대로 적극적인 취업홍보를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찌감치 정보통신 인력 양성에 눈을 돌린 덕이다.

하지만 실업고 관계자들은 여전히 자구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당연히 정부의 허술한 실업고 지원책이 성토의 대상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쉽게 한다거나 실업·인문계를 같이 하는 통합형 고교를 만드는 것은 실업고 위기 타개의 미봉책일 뿐입니다. 정보화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주는 게 진정한 해결책입니다.”한 실업고 교장의 말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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