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동차가 프랑스 르노에 팔려 양수도계약이 체결된 27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생산라인은 하루종일 멈춰 있었다. 근로자들은 생산라인을 팽개친 채 농성을 했다. 입찰을 앞두고 현장실사에 나선 해외자동차업체 관계자들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노조원들은 해외매각에 반대하며 이미 한달 넘게 생산을 중단해 왔고, 노조대표가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되자 가동을 재개한지 며칠도 안돼 또다시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부채 18조6,000억원의 거대한 부실덩어리 대우자동차 처리가 비틀대면서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정부당국과 채권단은 국내 자동차산업 재편에 대한 명확한 정책과 비전 없이 갈팡질팡하고,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노조의 대안없는 파업으로 대우차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당국과 정치권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채권단은 채권회수에만 혈안인 채 잦은 생산중단으로 기업가치마저 떨어지면 매각협상에서 큰 손실을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칫 매각마저 안돼 회생에 실패하면 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초래했던 기아사태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97년 대선에 발목잡혀 기아차 부실을 키웠던 정치권이 이번에는 총선 눈치보기로 대우차처리를 미적거리고 있다.
기아차의 독자생존이라는 실현불가능한 대안을 내놓았던 정부가 이번에는 해외매각과 국내업체 인수 사이에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차의 국민기업을 외쳤던 노동계는 이번에 대우차는 주인없는 공기업화를 주장하고 나왔다. 이해관계자들이 사분오열(四分五列)로 딴 목소리를 내면서 경영정상화는 요원해지고 수백개 부품 협력업체들은 도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GM과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해외 원매자 그룹도 불안한 표정으로 대우차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GM의 루디 슐레이스 아시아태평양 담당 사장은 “대우차가 파업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혀를 찼다.
대우차의 부실이 깊어져 이들 해외 원매자들마저 외면할 경우 금융권 등 국민경제 전체를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회생에 실패하면 대우에 자금을 지원한 금융기관은 수조원의 추가 부실을 끌어안게 되고 곧바로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우자동차 문제는 단지 열악한 재무상태에만 있는게 아니다. 짝짓기와 재편의 소용돌이에 들어간 세계 자동차시장의 국제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대우차 정상화의 관건이다.
탄탄한 자금력과 경영능력, 여기에 기술력까지 갖춘 투자파트너에게 넘겨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자동차 및 연관산업 발전구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회생의 희망이 남아 있을 때 실현가능한 대안마련과 기업가치 극대화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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