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난 소년이 엄청난 덫에 걸려 있다. 이 가족, 저 가족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가차없이 행사된 무장 공권력에 상처입고, 국가간 냉정한 이해관계의 틈새에 끼어 애처롭다. 정파간 정쟁의 희생물, 또는 대권경쟁의 제물이 될지도 모른다.대권주자들은 이 아이를 둘러싼 표계산을 이미 마친 듯하다.
쿠바의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이 아이의 처리문제가 지금 미국 조야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해 있다. 5개월 전 마이애미의 외진 해역에서 난파된 쿠바밀항선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됐을 때만 해도 그는 밀항중 엄마를 잃은 어린 난민에 불과했다.
표류도중 한 어부에 발견돼 미국에 상륙한 엘리안은 큰할아버지 집에서 처음 만난 사촌들과 낯선 미국생활에 조금씩 익숙해 가고 있었다. 쿠바송환절차에 나선 미 법무당국과 그를 계속 데리고 살려던 친척들의 대립으로 미국이 떠들썩했지만 그래도 세계의 주목을 끌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새벽 5시 무장한 이민귀화국 요원들은 최루탄을 쏘며 엘리안의 할아버지 집을 덮쳤다. 중무장한 특수요원이 옷장 속에 숨어 새파랗게 질려 있는 소년을 향해 자동소총을 갖다대며 강제구인하는 장면이 AP기자의 사진에 찍혀 공개되자 세상은 뒤집어졌다.
아동학대가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되는 사회, ‘어린이의 천국’을 자부하는 미국인들은 “이 땅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흥분했다. 거리를 두고 있던 유럽의 언론들은 이날 사건을 머릿기사로 쓰기 시작했다.
소년은 워싱턴으로 이송돼 쿠바에서 와 있던 아버지와 상봉했다. 미국의 사촌들과 즐거워하던 엘리안은 이번엔 아버지 품에 안겨 밝게 웃었다. 미 당국은 부자상봉 사진을 서둘러 공개해 발빠른 선전전에 나섰지만 그동안 소년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이미 비극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정작 소년의 비극은 딴 곳에서 더 깊어가고만 있다.
신병확보의 법적 권한행사를 위해 과도한 물리력을 불사한 법무당국, 새벽의 작전을 영장없이 자행된 오만한 불법행위로 규정한 공화당의 대정부 공세가 거세게 부딪치고, 가족의 가치(family value)와 ‘정부의 아동학대’를 내세우는 조지 W 부시 공화당대선후보의 쟁점몰이, 소수민족들이 전통적 기반인 민주당 앨 고어후보의 득실계산이 마구 뒤엉키고 있다.
공화당은 법무부의 구인작전을 따지기 위해 의회청문회를 열겠다고까지 나섰다. 미국내법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엘리안이 아버지에게 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는데, 이제 문제는 정부의 불법행위 여부로 비약을 해 버렸다.
쿠바에선 피델 카스트로가 연일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엘리안의 귀향을 외치지만 카스트로에게 엘리안문제는 국민의 반미주의를 강화하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이다. 이 사건에는 미국내 보수반공주의자들의 회귀심리도 엿보이는데, 바로 같은 원리이다. 엘리안이 돌아오건, 못 돌아오건 카스트로가 손해볼 것은 없다.
사실 엘리안문제의 특수성은 미국과 쿠바의 특수한 관계에서 더 증폭된다. 쿠바는 1962년 미국의 목끝에 칼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소련에게 미국을 겨냥하는 미사일기지를 제공하려 했던 ‘쿠바 미사일위기’가 그것이다. 그 한해 전 미국은 카스트로를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만에 특공대를 침투시켰다 실패했다.
미국에 정착해 있는 쿠바인들은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 반카스트로집단이다. 쿠바에 이산가족들을 두고 있는 이들은 쿠바가 카스트로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소년 엘리안이 이들에게 크나 큰 상징성을 갖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이에겐 지금 미 공군의 정신과 군의관이 붙어 있다. 이런 일들을 겪은 보통의 미국아이들이라면 벌써 정신과 전문치료를 받고 있는 게 상례다. 엘리안문제가 완전히 매듭되려면 여러 해가 걸릴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아이의 기억엔 상처가 깊어지고 대신 ‘얻은 자’와 ‘잃은 자’들의 득실표만큼은 화려하게 남을 것 같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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