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판 개평 2,500원 때문에…지난달 서울 도심 아파트에서 발생한 중학생 화풀이 살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산의 10명 연쇄살인, 경기 이천의 4명 연쇄살인 등 무차별적인 살인광풍(狂風)이 연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이들 범죄는 종전 사건들과 달리 하나같이 살해동기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이미 위험수준을 넘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천 연쇄살인
경기 이천경찰서는 25일 평소 악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사흘 동안 4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하고 1명을 중태에 빠뜨린 천모(52·이천시 안흥동)씨를 검거,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천씨는 지난 12일 오후 4시25분께 이천시 중리동 215의6 S건강원에서 이모(51·이천시 신둔면), 김모(42)씨와 함께 고스톱을 치던 중 시비가 일자 이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김씨에게는 중상을 입힌 뒤 달아났다.
천씨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는 첫번째 범행장소에서 1.9㎞가량 떨어진 이천시 창전동 Y주점에 침입, 내실에서 잠자던 박모(49)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3만원을 빼앗았다.
천씨는 이어 이틀 뒤인 14일 오후 2시30분께 충북 단양군 영춘면 문수사에 침입, 주지 석모(72)스님과 석씨의 아내 이모(69·여)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3만8,000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개평 2,500원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첫번째 범행을 저질렀고, 두번째 희생자인 박씨는 2년 전 천씨가 노점을 할 때 영업을 방해하면서 자신을 때렸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또 석씨부부는 지난해 6월 천씨가 문수사에 잠시 머물렀을 당시 서운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천씨가 4명을 살해한 대가로 빼앗은 금품은 고작 6만8,000원이었다.
◇줄 잇는 우발살인
이에 앞서 24일 경기 안산경찰서는 오락실에서 고교생을 살해난 이모(17·무직·안산시 이동)군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군은 전날 오후 8시께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던 중 유모(18·Y공고 2년)군이 자리를 비켜달라며 건드리자 곧바로 흉기로 유군의 얼굴과 배를 찔렀다.
지난달 15일에는 서울 종로구 모아파트에 사는 중학 3년생이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나서 홧김에 서울 종로구 모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여중생을 흉기로 살해, 충격을 주었다.
이달 들어 충남 천안에서 검거된 부산·울산지역 10명 연쇄살인범도 금품을 터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몸짓을 보이면 가차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등 인명에 대해 일말의 가치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 견해
연세대 전우택(全宇鐸·정신과)교수는 “사회 전체가 도덕이나 가치, 배려보다 물질적· 동물적 본능충족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컴퓨터 게임 확산으로 살인이 가볍고 쉬운 것으로 일상화하고 있는 것도 한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동국대 이상현(李相賢·범죄심리전공)교수는 “사회의 복잡화로 전체국민의 3% 이상이 정신병적 증세를 앓고 있다”며 “이들이 특정상황에서 좌절, 소외 등을 느끼면 발작적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高鎭光)사무총장은 “최근의 살인사건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찌든 일부 계층의 불특정인 대상 범죄”라며 “나누는 삶을 실천할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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