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에 봄꽃이 한창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산자락에 피기 시작하던 벚꽃이 눈길을 끌더니, 이제는 중턱까지 복사꽃 산벚꽃이 화사하다. 세종로나 태평로 큰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새로운 축복이다.조선총독부 건물이 시야를 막고 있을 때엔 거기 꽃이 피는지 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광화문 너머로 근정전 경회루 용마루와 청와대까지 보이게 되고부터 서울사람들에게 북악의 꽃과 단풍, 녹음과 설경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북악을 병풍처럼 두른 경복궁에도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총독부 시대에 헐렸다 복구된 전각들과 어우러진 봄꽃들의 경염(競艶)은 새로운 서울의 명소라 할 만하다. 그런데 경복궁은 보행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아 꿈속의 궁전과 다름 없다.
광화문 바로 앞에 이르러도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 한참을 걸어 동십자각 앞 지하도를 이용하거나, 종합청사 앞을 거쳐 횡단보도를 세 번 건너도 아직 광화문은 멀다.
■그러니 장애인이나 노약자, 초행자나 외국인들에게 경복궁은 섬이나 다를 바 없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광화문 앞 큰길을 건너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알아도 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으니 접근을 시도해도 헛고생이다.
횡단보도가 있는 종합청사쪽을 택하려 해도 그곳으로 건너가는 길 역시 지하도뿐이다. 23일 지구의 날 행사에 참석했던 많은 시민들 가운데도 경복궁 가는 길을 몰라서, 또는 걷기가 싫어서 꽃놀이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
■경복궁은 우리 문화와 역사의 얼굴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좌묘우사(左廟右社)의 풍수지리를 이처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어디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이 궁궐은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인류문화 유적이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시민들로부터 멀리 떼어 놓으려는 도시행정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광화문 앞에 횡단보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시민들의 오랜 숙원을 외면하는 까닭도. ‘걷기 좋은 서울’ ‘쾌적한 도시환경’이란 시정구호가 부끄럽지 않은가.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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