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스코트 니어링·헬렌 니어링 지음/보리 발행미국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소로(1817-1862)는 1854년 펴낸 ‘월든’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삶의 미덕을 찬송했다. 자신도 직접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간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았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매년 교재로 선택될 정도로 ‘월든’은 매력있는 체험기이자, 삶의 한 방식이다.
‘조화로운 삶’(원제 Living the Good Life, 번역 류시화) 역시 도시 출신의 한 부부가 시골에서 돌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산 20여 년의 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한 ‘귀농일기’이다.
남편인 스코트 니어링(1883-1983)은 펜실베이니아대·톨레도대 정치학 교수로 재직중 아동노동과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다 두 차례 해직당한 ‘운동권’교수. 아내 헬렌(1904-1995)은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바이올린 유학까지 다녀온 미모의 재원이다. 두 사람은 1928년 처음 만나 같은 해 결혼했다.
책은 우선 도시인이 낯선 시골에 정착해 돌집을 짓고 밭을 일궈 먹을거리를 구해 살아가는 착실한 방법론으로 읽힌다. 왜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오지로 들어가야 했는지, 어떻게 땅을 구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 꼼꼼한 기록과,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엄정한 생활원칙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부부는 당시 뉴욕을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서 파시즘의 먹이가 돼 버린 사회’로 규정했다. 불황을 타지 않는 독립된 경제를 꾸리기 위해, 자신들의 건강을 위해,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살기 위해 이들은 시골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버몬트주 윈홀 마을의 버려진 농장 3곳을 사들였다.
이들은 먼저 ‘삶의 중심 원칙’이라는 것을 세웠다. 책에는 12가지가 나오지만 중요한 것만 챙겨보면 이렇다.
하나,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한다. 둘,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하고 돈은 벌지 않는다. 셋, 은행에서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는다. 넷, 단풍나무 시럽을 능률있게 생산한다. 다섯, 우리 땅에서 아무 것도 내다 팔지 않는다. 채소나 곡식이 남는다면 이웃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준다. 일곱, 집짐승을 기르지 않는다. 아홉, 자연에 있는 돌과 바위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20여년 동안 성실히 그리고 소중하게 지켜졌다.
이들의 사려깊음과 철저한 준비성, 부지런함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대목은 역시 ‘집짓기’와 ‘농사짓기’부분이다. 큰 바위를 뒷벽으로 삼아 돌로 된 살림집과 유리로 된 통로, 식품저장소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 모든 연장을 쓰고 나면 기름칠을 해 제 자리에 놔두려는 원칙 또한 놀랍다. 나도 한 번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잡초, 풀로 영양분이 가득한 퇴비를 만들고, 태양열 온실을 만들어 한 겨울에도 상추를 뜯어먹는 이들의 모습이 그립다.
하지만 책에는 이렇게 소시민적인 삶의 방법론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 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따로 있다. 바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 경쟁을 일삼고 탐욕스러운 사회질서에 반항하는 것, 이를 통해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 등이다.
이들은 오전 네 시간 일하고 오후 네 시간은 자유롭게 쉬고 책을 읽고 취미생활을 가졌다. 일요일에는 대개 음악을 감상했으며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과 토론을 갖기도 했다. 집을 꾸밀 때도 장식이 달린 커튼이나 그림이 있는 벽지 등은 전혀 쓰지 않았다. 또 제철에 나오는 음식만 먹어 건강을 유지하려 했고, 사탕 과자 고기 청량음료 술 차 커피 담배 따위는 전혀 사지 않았다.
이들은 또한 벽난로를 만드는 이웃과 돌계단을 만드는 자신들의 노동력과 기술을 서로 교환하는 실험까지 했고 여기에 크게 만족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음악회를 열어 많은 사람이 즐겁게 모일 수 있도록 했고, 주정부가 우편배달을 끊기로 결정했을 때는 마을 주민들과 공동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한때 이들을 사회주의자로 보기도 했다.
1954년에 씌여진 이 책이 21세기에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가라는 메시지 때문이다. 아무리 두 나라 땅덩이와 경제력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수만 평의 땅을 수천 달러에 사들여 시골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애초 우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또한 부양하고 교육해야 할 아이들도 없었다. 이러한 행간 읽기가 없다면 이 책은 결국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 헬렌이 1991년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이 1997년 번역돼 나왔을 때 한 신문은 서평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은 벽돌을 구워 집을 지었고 오리를 키우기 위해 연못을 팠다’.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이들이 벽돌을 구웠고 오리를 키웠다는 언급은 없다. 이들은 밭을 갈다 나오는 돌을 주워다 집을 지었고, 집짐승은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고 생각해 개나 고양이조차 키우지 않았다.
/김관명기자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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