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유학하던 영국에서 귀국을 서둘던 때였다. 이웃 영국 할머니에게 귀국인사를 하자 깜짝 놀라며 극구 귀국을 말렸다. “아이들도 어린데 그 위험한 곳에 왜 돌아가느냐”는 얘기였다.중동등 분쟁지역출신 유학생들처럼 눌러앉을 길이 있지 않으냐면서, 자기 집마당의 나무딸기를 한 되박씩 따다주던 내 아이들이 딱하다고 눈물마저 글썽였다. 그 시절 영국 언론이 수시로 전한 전쟁터같은 극렬시위현장 보도에 익숙한 노파심 탓이었다.
■그랬다. 우리는 그때 이미 선진국에 다가선양 행세하며 값싼 칭송에 한껏 고무됐지만, 유럽등 선진국 일반인들이 실제 느끼는 이미지는 달랐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과 민족상잔·쿠데타·독재·테러·극렬시위로 얼룩진 어둡고 험악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자랑삼던 베트남 참전과 호신술 격파묘기 등도 전투적 인상을 더했다. 북한의 판문점 도끼만행과 테러 등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이 남과 북을 엄밀히 가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사정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산업자원부가 미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 국가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 전쟁과 분단·분쟁지역을 대표적 이미지로 든 답변이 경제발전과 올림픽·월드컵 등을 지적한 답변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또 올림픽을 대표 이미지로 꼽은 응답자에 비해 분단상황을 지적한 응답자들은 한국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크게 적었다. 국가 이미지가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국가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인 국제 언론의 편향보도 탓도 있다. 선진국 언론은 선진국 바깥세계를 보도하는데 대체로 부정적·갈등지향적이다. 언론의 선정성에 우월감까지 가세, 전쟁·쿠데타·재난·부패 등의 보도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이미지 조사를 맡은 국제경영전략연구원의 결론처럼 체계적 국가 홍보전략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우리 자신의 부정적 면모를 깨닫고 고치는 노력이 절실한 것은 물론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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