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술시간 석고 데생에서 열심히 목탄으로 그렸던 얼굴이 바로 그리스 사람이었다.고대 그리스가 멸망한 뒤 많은 고통을 받아가며 혹은 없어지고 혹은 뒤섞임으로써 그 얼굴은 결코 아름다움의 표본만으로 될 수 없었다.
터키 강점기는 암흑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인구가 3,000만이라면 1,000만 이상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떠나서 또 하나의 그리스를 이루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렇다 할 삶의 규범이 없다. 선악의 문제도 힘과 지략의 문제에 미치지 못한다.
신들에게는 윤리가 없다. 바로 이 사실이 로마시대의 기독교 율법에 의해서 그리스 신화를 한갓 엽기적인 흥미의 대상으로 만들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을 지탱해온 윤리 자체가 도리어 인간을 박제화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 신화 속의 자유로운 다양성이야말로 새로운 가치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석고 데생과 함께 서구문화의 바탕인 헬레니즘을 지적 체험으로 삼고 있으므로 그리스가 ‘오소독스’라는 그리스 정교만으로 인구 98%를 관장하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나시스가 설립한 올림픽 항공의 경비행기로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 건너갔다. 에게해 저쪽이었다. 고양이들이 많았다. 고양이 달력까지 팔고 있었다. 벌써 나는 그곳의 미아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고대인들은 죽음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여행은 확실한 일정과 목적지 대신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을 더 값진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미로의 의미는 합리주의 이전과 이후의 현대인간에게 삶의 궁극적 의미로 떠오르고 있다. 유대민족이 십계를 받은 것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고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바다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새로운 생명과 창조의 길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여행자들이 길을 찾지 못하는 상태, 바다 한복판에서 노를 뱃전에 올려놓고 어느쪽으로 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로소 신비의 섬에 도달한다는 옛말이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말이고 뭣이고 다 끊어진 곳이 바로 그러한 진리의 곳이란 말이다.
나는 J. 아탈리의 현대유목론을 생각하며 그리스의 섬들을 오락가락했다. 본토에서 흩어져나간 섬들은 대소 2,200개라 한다. 그리스 지도를 보면 본토와 섬들은 마치 거친 곡식다발의 낟알들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진 느낌이었다.
공항 이름은 니콜스 카잔차키스였다.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는 카잔차키스를 “그의 책은 영혼의 책”이라고 격찬했다.
섬 전체는 올리브와 포도 감귤밭과 석회석 산악들로 이루어졌다. 이 섬이 기원전 1,800-1,500년대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 시리아 일대 그리고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던 해양제국의 중심이었다.
올림포스 신들의 주신(主神) 제우스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신에게도 고향이 있는 것이다.
제우스의 족보를 잠깐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에서 우주는 남성과 여성의 신격(神格)이 짝지어 창조된다. 헤시오도스 ‘신통기’에 의하면 우주의 첫번째 탄생은 카오스였다. 혼돈으로 번역되지만 빈 공간이다. 물질과 에너지가 뒤섞인 상태였다.
이 카오스가 대지 가이야와 짝지어 에로스를 낳는다. 에로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관능과 육욕의 에로스가 아닌 원초적인 에너지로 된 생명체다.
한편 카오스에서 밤과 낮이 나왔고 가이야는 우라노스(하늘) 우레아(산) 폰토스(바다)들을 낳았다. 신들의 제1세대이다. 만물 생성의 시작이었다.
카오스를 이은 에로스에서 시간과 공간이 나오고 자연이 나와 신들과 인간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된다. 가이야는 우라노스와 짝지어 많은 아이들을 둔다 신들의 제2세대이다.
티탄족으로 불리우는 이 제2세대 신들은 힘이 세고 괴물이고 야만적이다. 이들의 우두머리가 우라노스 가이야 사이의 막내동이 악동 크로노스였다. 그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미움에 보복한다. 바로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냈다. 그때 흘린 핏방울을 어머니가 받아 몸 속에 넣자 거인족과 복수의 여신들이 태어난다. 잘린 성기는 바다에 던져져 그것으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왕좌에 앉은 크로노스는 아내 데이아와의 사이에 신들을 낳았다. 그 중에 헤라, 하레스, 포세이돈들도 있다. 막내가 바로 제우스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이들을 다 삼켜버리기 때문에 어머니 데이아가 막내 제우스만을 크레타섬 동굴 속에 숨겨두고 출산 때 입은 옷에 돌덩이를 싸서 그것이 갓난아기라고 속였다.
그렇게 해서 제우스는 무사했다. 하지만 뒷날 아버지의 세력을 물리친 뒤 아버지의 뱃속에 들어있던 형들과 누나들을 뱉아내게 했다. 누나 헤라가 제우스의 아내가 되지만 남편의 여성편력으로 질투의 여신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크레타 섬의 높은 산 밑 제우스의 출생지 쪽을 멀리 바라보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들을 깊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신들이 자신의 조상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신들은 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연장이기도 했다. 신은 한번 태어나면 영원히 죽지 않고 존재한다.
제우스는 여기저기 아이를 낳았다. 여신들뿐 아니라 인간인 여인들도 적지 않게 건드렸다. 그리스 최대 영웅 헤라클레스도 한 여인과의 일시적 관계로 태어난 것이다.
내가 크레타에 간 것은 고대 그리스의 영광인 미노아 문명의 현장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크레타는 그리스 본토와 이집트 사이의 바다 위에 가로놓인 큰 섬이다. 제우스가 황소로 둔갑해서 바다 건너 페니키아 공주 데이아를 데려다가 미노스를 낳았다.
미노스는 어머니가 크레타 지도자 아스테니퀴스와 재혼하자 양자로 들어가 그 왕조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친아버지 제우스의 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육의 힘이 컸다. 거기에 삼촌 포세이돈의 힘으로 바다 전체를 지배했고 해적들을 소탕할 수 있었다.
이 미노스가 바로 크노소스 궁전을 지어 그 시대의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고 부르게 된다.
하지만 미노스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르크의 ‘술탄’과 같은 황제라는 보통명사이다.
그의 궁전 지하에는 미로와 미궁을 만들어 삼촌과 그의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괴물을 가둬둔다.
미노스는 신의 아들이자 신관 겸 왕이었다. 그의 궁전은 3,600년 이상 지하에 파묻혀 있다가 그 화려한 자취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궁전 일대는 그것을 감싸는 성벽 따위도 없다. 다만 겉모습은 어느쪽에서는 1층이고 어느쪽에서는 4층이기도 했다. 그 내부는 1,200개의 방 자체가 미궁을 이루고 있고 그 방에 이르기 위해서 미로와 같은 통로가 있다.
미로. 이것이 내가 현대사상의 한 기초로서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미로 또는 미궁은 오늘날 인간이 잃어버린 길이기도 하고 동시에 새로운 길이기도 하다는 의미 변화를 그곳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로야말로 지혜라고 말할 힘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이 미로는 고대 인류 이래로 널리 있어온 관념이다. 아마도 인간 사고의 가장 오래된 형태가 미로로서의 도식이 아닐까. 복잡하고 비극적이며 운명적이기까지 한 길이 크레타의 옛 문명 속에서 존재했던 것이다.
미로의 그림은 미노아 문명 속의 미궁 말고도 세계 도처의 암석이나 벽에 그려져 있고 유목민의 성소에 그것이 그려져 있었다. 영혼, 내면 그리고 본질로서의 길이 곧 미로였다.
서구의 이성(理性)과 직선의 문화가 오래된 미로의 사상을 죽였다. 개발, 속도, 시장경제의 배후, 예측가능한 미래 따위의 이념은 미로를 역사의 뒤안으로 쫓아내어 낡은 장식으로 남겨놓았다.
그 미로가 이제 두뇌, 신경, 내장, 귀, 지문, 음향, 유전암호, 만다라 그리고 반도체칩, 우주 속의 에너지, 인간의 무의식과 같은 오묘한 복잡성으로 삶의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미노아 문명의 폐허에서 이라클리온으로 돌아온 나는 그 일대가 훤히 내다보이는 카잔차키스 묘지 언덕에 올라갔다. 생나무 십자가가 멋없이 세워져 있다. 그는 현대 그리스의 자랑거리이다.
영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소설 ‘희랍인 조르바’는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적이고 크레타 사람보다 더 크레타적이라고 한다. 젊은 날 터키와 싸운 향토의 빨치산이었다 제2차대전 뒤 잠시 장관직에도 있었으나 그는 국교(國敎)와의 갈등이 깊었다. 끝내 그리스에 있지 않고 독일로 떠나서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가 조국에 돌아올 때는 관 속의 시체였다.
그의 생가나 살던 집 그리고 역사박물관의 기념관과 묘지들은 이제 크레타 정신의 한 명소이다. 언젠가, 100년 이상의 시간이 가산되면 그는 그리스 신들 중의 한 신이 될지 모른다.
그리스 신화는 신화로부터 역사로 건너오고 역사를 신화로 바꾸기도 하며 그 찬란한 고대를 이루었다. 크레타 문명도 신화와 역사를 드나드는 파도소리인지 모른다./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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