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코, 너 미치코 맞니?” “너도 많이 늙었구나”20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무학여고 교정 곳곳에서는 한일 동문간의 55년만의 재상봉 행사가 열렸다.
이날 개교 60주년을 맞은 학교가 1945년 해방 전 학교를 다닌 일본인 동문 38명을 초청한 것. 특히 3, 4회 입학생으로서 졸업도 못한 채 일제 패망과 함께 본국으로 쫓겨가야 했던 16명에게는 명예졸업증서가 수여됐다.
풋풋한 소녀시절을 보냈던 교정을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야 다시 찾은 일본인 할머니들은 하나하나 호명되어 단상에 올라서며 다시 18살 소녀로 되돌아 갔고, 한국할머니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일본인 급우들의 ‘졸업’을 축하했다.
55년 전 당시 무학고녀는 일제의 식민정책이었던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 시범학교로 한국과 일본학생을 반반씩 뽑아 짝을 붙여 놓았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본인 단짝과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기쁨만큼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도 컸던 기억이 납니다.”미국 시애틀에서 달려온 장학일(張鶴日·73)할머니의 회상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도 주름진 역사의 간극은 있었다. 점심을 함께 하던 일본할머니가 한국 할머니를 옛날처럼 창씨개명 이름으로 불렀다가 잠시 서먹해지기도 했고,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관련해 가벼운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소녀시절의 우정만큼은 반세기의 세월도, 현해탄마저도 뛰어넘는다”며 꼭잡은 서로의 손을 쉽게놓지 않았다.
/이동훈기자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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