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은 유권자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음을 보여 주었다.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부패 정치인 상당수가 퇴출된 것이다. 지역주의로 인해 미흡하기는 했지만 정치계의 물갈이가 조금은 이뤄졌다.선관위가 후보자들의 병역 납세 전과기록을 공개하고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대상자 명단발표, 낙선운동, 후보자 알리기운동을 펼친 것이 크게 작용했으나 유권자들이 이에 호응하지 않고 올바로 판단하지 못했다면 그런 노력들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명분 없이 급조된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은 냉혹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15대 총선 때 보다 돈이 더 많이 뿌려지고 관건개입도 늘어났다 한다. 위법 적발건수가 몇 배로 증가한 것은 선관위가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위법행위가 실제로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선거를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한 것도 그렇게 신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뿌려진 돈과 흑색선전 관권개입 정상회담발표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고 선거구에 따라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 정치인들의 그런 잔재주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유권자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에도 돈 음해 관권개입 잔꾀로 유권자를 우롱하는 작태를 반복하면 더 큰 보복을 당할 것이다. 검찰과 사법부도 이렇게 높아진 유권자 수준을 의식하고 선거사범 처리에 임하지 않으면 명예와 위신에 큰 손상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성공적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너무 많다. 투표율이 사상 최저란 사실과 지역주의가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된 것이 가장 우려할 문제다. 앞으로 시민운동과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지역감정 이용을 가장 큰 악으로 간주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정책대결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큰 흠이었다. 시민단체들의 무자격자 퇴출운동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후보자의 자질에 집중케 한 것이 그 가장 큰 원인이었다. 물론 정당 간에 정책차이가 별로 없고 공약(公約)이 대부분 공약(空約)이기 때문에 정책대결이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표결이 당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역시 정당들의 정책과 공약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선거는 인물본위가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언론과 시민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역시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었고 그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옥에 티는 선거법을 어긴 것이다. 비록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선거법 위반 증가에 어느 정도 공헌했을 것이다.
앞으로 시민운동은 선거법 개정운동을 벌여 낙선운동을 합법화하든지, 후보자와 당 정책에 대한 모든 정보를 상세히 공개함으로 시민단체가 아니라 유권자가 낙선대상을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후보자 당 사법부 못지 않게 시민운동도 이제 높아진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을 의식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손봉호 (孫鳳鎬) 공선협 공동대표·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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