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이회창총재 본보회견-지역구 112석, 전국구 21석 합해서 133석은 선거 직전 당이 분석한 수치보다 높은 것입니까, 낮은 것입니까.
“총선 직전 약간 비관적이었습니다. (여권이) 사흘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터뜨렸는데 그 결과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큰 영향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충격이 있었습니다. 각 언론사, 특히 방송사에서 입수된 여론조사 결과가 당에 불리하게 나오고 해서 긴장 했습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는 정말 아주 혼이 났습니다. 잘못 나와도 1당은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요. 상황실에 들렀더니 출구조사 결과 때문에 모두 낙담하고 있었는데 저는 15대총선 때의 결과를 미루어 봐 반드시 정확지는 않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복원 또는 합당도 한나라당이 말하는 인위적 정계개편에 해당합니까.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요.
“DJP 공조를 복원하겠다는 것은 인위적인 정개개편이라기 보다는 공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자민련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지요. 그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의원 빼가기 등으로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국민은 분명히 여소야대의 구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구나 단일 야당으로 여소야대가 된 것은 유사 이래 처음입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끌어가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정치를 풀기 위해, 레임덕 현상을 피하기 위해, 아닌 말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그런 명분으로 여소야대 구도를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합당은 국민이 선택한 의도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도 과반 의석 확보에 나설 생각인지요.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현재의 위치와 의석을 지켜 나가고자 합니다.”
-이총재께서는 17일 총재단·주요당직자 회의에서 금권·관권선거에 대한 정부·여당의 사과와 관련자 문책을 다시 요구했습니다. 이 문제가 영수회담의 선행조건입니까.
“이번 총선은 유례없는 혼탁선거였습니다. 부정선거 사례를 모은 백서도 펴낼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공명한 선거의 원칙을 다시 세우는 의미에서 이번 총선의 혼탁상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 부분에 대해 분명한 사과와 책임자 문책이 있을 때까지는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이를 엄격히 적용하게 되면 정상회담 자체가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본래 취지를 살려서 성사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가보안법, 미군철수, 친북인사 활동 보장 등 북측이 주장하는 선행 조건을 수용한다면 큰 문제가 나올 수 있으므로 이를 가려 국민의 불안을 덜어야 합니다. 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회담이 아니고 남북 문제를 푸는 것이라면 지켜야 할 원칙과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국민의 안전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타협하는 식의 양보는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상호주의 원칙입니다. 세번째는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이 세금으로 하는 것이면 반드시 국회와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낸다면 정말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남북정상회담이 남북문제 해결에 지름길이 되고,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가져오고, 평화를 가져온다면 초당적으로 이뤄내야 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정상회담을 어찌됐건 성사시켜야 한다고 쫓기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과에 매달려서 양보해서는 안될 것까지 내줄까봐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고삐를 잡았다고 생각해, 될 수 있는 대로 안주려고 할 것이고 양보하기 어려운 것을 끌어내려 할 것입니다.”
-공천파동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선거에 이겼으니 공천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포용력 문제 등을 들어 대권행보에는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평도 있습니다.
“개개 공천을 놓고 잘됐다, 못됐다 자평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이번 공천은 개혁 공천이라고 개념규정을 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쌓인 정치의 구태를 벗고 새로운 정치로 나가는 실험이었습니다.”
-대쪽 이미지가 정치를 하면서 좀 훼손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방탄국회 시비도 있었고 소속 의원의 검찰 소환도 거부했는데.
“정치판이라는 데가 말하자면 구정물을 뒤집어쓸 때도 있습니다. 법조계에 있을 때처럼 흑백재단하는 식의 논리로 원칙을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판에 들어와서도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리 쉽지는 않고요. 대쪽 이미지가 정치에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손해를 볼 수도 있어요.
가령 정도로 가면 때로 편협하다는 소리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 생기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가면 포용력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 고민스럽습니다. 어찌됐든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제가 부족한 탓이지요.”
-총선 결과 영남표 시멘트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지역감정 공고화 현상에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해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감정이 주요 원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역대립 감정보다는 반DJ정서, 또 김대통령 개인에 대해서 보다는 현 정부의 2년 동안의 국정 운영에 대한 반감, 거부 정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남북정상회담 발표, 검찰의 병무비리 수사 등 정략적이고 눈에 보이는 선거 전략을 쓰는 것에 대해 강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정권에 대해 확실한 견제 세력을 줘야 한다는 정서가 뭉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선거구도의 미묘한 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를 잘해야 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개방적이고 앞선 국민의식이 상당히 무서운 심판을 합니다.”
-총선 바로 다음날 상생의 정치를 주창했는데요, 남북정상회담 문제 등에서 논리로 대응하기 보다는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상생의 정치 모습을 보여줄 의향은 없습니까.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걱정과 원칙을 말한 것입니다. 정말 국민을 위한 국정 운영을 위한 것이라면 야당으로서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입니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분명히 불법이라며 대통령과 정부의 조치를 주시하겠다고 했는데요.
“개정된 선거법 테두리 안에서 시민단체가 건전한 시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권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 보듯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법을 무시한 방법으로 운동을 한다면 법을 지키는 공명선거를 하자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의 낙선운동은 불법인데도 허용되고 다른 개인의 불법 선거는 안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명선거를 확립하는 길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낙선운동에 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 입니다. 아예 법을 고치든가 그대로 유지한다면 적어도 불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분명한 의사 표명이 있어야 합니다.
선거는 공정한 경쟁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공정한 선택이라는 원칙을 깨뜨리는 것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 내에도 소위 차세대 주자군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5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이들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당대회 날짜는 안 정했습니다. 공천과 총선 결과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민주적이고 개방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누구든 나오고 싶으면 나와서 자기의 길을 밝히고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계획입니까.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리=홍희곤기자
hghong@hk.co.kr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이총재, '정계개편' 우려와 경고
이회창 총재는 인터뷰 내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부정과 유보가 교차하는 인식의 편린들을 내보였다. 이총재는 먼저 영수회담 문제와 관련,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사진용이나 국민에게 보이기 위한 회담이 돼선 안된다”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풀어가기 위해선 우선 대통령이 진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총재는 또 “김대통령이 정국을 풀기 위해 여소야대의 틀을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영수회담 백번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면서 “말로만 국정운영의 동반자라고 할 게 아니라 확실한 인식과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총재는 두차례 영수회담에서 겪은 김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과거에 대해 말하기는 솔직히 싫고…”라며 비켜갔다.
이총재는 대신 “(김대통령이)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대화와 타협의 장에서 좀더 진지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과거의 경험보다는 미래의 관계 설정에 주안점을 두려 했다.
이총재는 특히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 가능성과 관련, 요소요소에 우려의 목소리와 경고의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향후 양자간 관계설정에서 이 문제가 가장 관건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김대통령이 개혁 명분을 내세워 국민이 정해준 여소야대를 허물겠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라면서 “그렇게 한다면 정치의 비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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