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았다.”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 재연을 우려하며 17일의 뉴욕 증시를 응시했던 투자자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락이 거듭되는 불안한 장세 끝에 다우존스 공업평균지수와 나스닥지수 모두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나스닥의 이날 상승폭은 지수로는 사상 최대, 상승률로는 87년 블랙먼데이 이틀 뒤인 21일이후 두번째를 기록했다. 유럽 및 아시아 증시 대부분도 이 여파로 반등해 폭락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주 폭락을 불렀던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진정된 것으로 판단했으나 미 증시가 상승국면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날의 급등락처럼 악재(인플레이션 우려)와 호재(기업 수익 개선)의 줄다리기로 한주내내 혼조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다만 ‘건전한 조정국면’이라는 데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투자분석가 애비 코언은 “최근의 폭락사태는 기조의 변화보다는 시황의 변화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했다. 곧 ‘묻지마 투자’로 급상승했던 닷컴(.com)기업의 거품이 빠지는 국면이며 미국 경제의 기반이 탄탄해 과거처럼 증시 기반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날 뉴욕증시는 매출과 수익이 탄탄한 제너널 일렉트릭(GE)과 프록터 앤 갬블, 인텔, 시스코시스템스, 오라클 등이 상승을 주도했다. 반면 순수 인터넷 기업들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지난주 폭락사태는 닷컴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며 전망과 실적없는 닷컴의 솎아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인터넷 기술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종전과 같은 속도로 팽창할 것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닷컴 기업에 대한 투자 분위기는 더욱 선별적이고 신중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전기 자동차 철도 등이 출현해 첨단기술로 인식될 때도 이를 이용한 창업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으나 곧바로 다윈식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치면서 몇개 기업만 살아남는 통례를 보여왔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을 낮춰 소비를 진정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의 제레미 시걸 교수는 “일반 투자자들은 그동안 1년에 25-30%의 수익은 챙길 수 있다고 믿었다”며 “최근 폭락세는 이런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기대수익률의 하향조정은 소비 심리를 진정시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대 목표로 세운 경제 연착륙을 가시권에 넣을 전망이다.
하지만 증시 주변에선 “아직 숲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분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결국 이번주를 지나야 증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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