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달 후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만나게 된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봄의 향기와 온기를 새삼 느끼며,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지난 일들을 돌이켜본다.대통령께서 뜻밖에도 특사의 임무를 맡기셨을 때 갖게 됐던 책임감과 중압감, 처음 만남부터 최종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팽팽했던 긴장감, 우여곡절 끝에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가 되었을 때 느꼈던 벅찬 감격과 희열 …. 이 과정에서 송호경(宋浩京)북측특사도 이야기했듯이 “민족의 단결과 통일의 길에 획기적 사변(계기)을 마련한 것은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조국과 민족,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미력(微力)이나마 최선을 다해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솔직히 이번 협상을 시작할 때는 성공여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북한측의 남북 당국자간 회담제의에 우리가 응하기는 하면서도,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협상테이블 아래로 건네주는 반대급부가 아니라, 희망과 비전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남을 거듭하면서 나는 이번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됐고 그 예감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북측특사와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그동안 우리가 취해 온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과 베를린선언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도 이제는 국제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남한과의 협력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제조건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통일을 향한 첫 단추를 끼게 되었다. 우선 나는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반세기만에 남북의 정상이 만난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다시없는 경사(慶事)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번 합의에 대해서는 전세계인이 모두 축하하고 있지 않은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0년전부터 “용공(容共)”이라는 오해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견지해온 통일론의 결실이 바로 이번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의 표현대로, 통일신라 이래 1,300년 간 통일민족을 이루고 살아왔던 우리 조상의 음덕(蔭德)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국민 절대다수와 전세계가 흔들림 없이 햇볕정책을 지지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각에서 굳이 이러한 성과를 폄하하거나 정쟁(政爭)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열릴 남북한의 정상회담은 민족적 대과업이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함으로써, 남과 북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야 했던 천만 이산가족의 절절한 염원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풀고 남과 북의 경제를 모두 튼튼하게 만드는 계기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의 믿음과 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 모두의 소망인 통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국회의원 총선도 끝났고, 남북 정상회담이 누구에게 정치적으로 득이 되느냐 실이 되느냐 하는 불필요한 공방을 해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직도 우리가 통일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기만 하다.
지금 우리가 힘을 합해 해야 할 일은 당면한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개최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성과를 내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온 국민이 힘과 뜻과 지혜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거듭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정상회담 합의발표는 따뜻한 남풍이며, 꽃소식을 전해주는 화신풍(花信風)이라는 것이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