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계기로 바둑계에도 북한과의 ‘반상 교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바둑은 분단이후 남북간 교류가 거의 없었던터라 북한 바둑의 실상 자체가 두터운 베일에 쌓여 있는 분야. 한 쪽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우뚝설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온 동안 다른 한 쪽은 과연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을까. 국제대회 등을 통해 드러난 북한바둑의 수준과 현황을 살펴본다.북한은 바둑을 한동안 ‘자본가와 신선들의 놀음’이라며 홀대했으나 1989년국가체육연합회 산하에 ‘조선바둑협회’를 설립, 전통민속놀이의 하나로 본격 육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이후 매년 ‘백두산상 바둑경기대회’(2월)와 ‘전국바둑경기대회’(8월)를 개최하며, 꾸준히 10대 꿈나무를 양성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 단위의 학생소년궁전에 바둑소조(바둑부)를 조직, 유망주들을 중국기원으로 유학 보내는 등 국제화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눈치다.
북한바둑이 대외에 첫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92년 일본서 열린 제 14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였다. 북한 대표로 처녀출전한 문영삼(21·당시 13세)7단이 4승4패로 15위를 기록하면서부터. 문영삼은 5년 뒤인 1997년 일본 삿포로(札幌)에서 열린 제19회 대회에도 출전, ‘프로 9단’수준의 실력을 지닌 중국강호 류쥔(劉鈞) 7단을 꺾고 3위에 올라 북한바둑의 성가를 드높였다. 류7단은 당시 세계아마바둑 챔피언이자 1997년 중국신인왕전에서 마샤오춘(馬曉春)과 창하오(常昊) 등을 꺾고 우승한 초특급 강자였기 때문이다.
문7단에 이어 리봉일(19·제21회 세계아마선수권대회 3위 입상)7단, 최명선(18·제18회대회 7위입상)7단 등 비슷한 기력의 기사들이 잇달아 국제무대에 등장하면서 북한바둑은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최7단은 1996년 제18회 대회에서 한국의 이용만 6단과 사상 첫 ‘남북대결’을 벌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결과는 세계 최강급인 이 6단의 5집반 승. 이 6단은 국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북한 바둑이 예상보다 강해 놀랐다”고 말했다.
여류기사 중에선 입문 1년만인 1992년 세계아마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 최연소(당시 7세)로 출전, 8위에 오른 최은아(15)와 조새별(18) 등이 강자로 꼽히고 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그동안 공개된 기보들을 분석해보면 북한 바둑은 체계적인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은 전투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최고수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아마 5∼6단 정도 수준으로, 프로기사와는 3점 치수 이상의 차이가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컴퓨터 바둑에선 세계 최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의 조선컴퓨터무역센터(KCC)가 개발한 바둑 소프트웨어 ‘은별’은 일본 주최 세계컴퓨터바둑대회(포스트배)에서 1998년과 1999년 잇달아 우승, 2년째 세계 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기원으로부터 3급 인증서를 획득한 이 소프트웨어는 현재 국내에도 수입돼 시판 중이다.
‘은별’의 판매원인 ‘티존코리아’관계자는 “북한의 경우 확률이나 통계학 등 군사에 관련된 기초과학 분야가 발달한 덕분에 바둑관련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남들보다 앞선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좀 더 정교한 컴퓨터 기술이 접목된다면 훨씬 우수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