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환(68) 전의원은 ‘국시파동’으로 구속될 때 살던 서울 방배동 연립주택에 15년째 살고 있다. 이 집에는 검찰의 출두요구를 거부하며 농성을 벌이던 유 전의원을 격려하기 위해 당시 신한민주당의 김대중, 김영삼 고문도 다녀갔었다.그는 96년 15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하는 좌절을 겪었지만 이듬해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로 고려대 대학원에 입학해 지난 2월 ‘대북 포용정책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국시파동’은 유 전의원이 1986년 10월13일 국회본회에서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며, 어떤 체제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한 데 대해 집권당이 반발함으로써 빚어졌다. 당시 유 전의원은 “국시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현역 의원이 국회에서의 발언을 이유로 구속까지 된 것은 지금 시각에서 보면 명백한 야당탄압거리였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9개월 수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92년 9월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인정해주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민족과 통일에 대한 그의 지론과 열정은 한결같았다. 이것은 석사학위 논문 기조이기도 하다.
현 정권과는 늘 거리를 두었던 유 전의원이지만, 남북 정상의 대좌합의에만큼은 각별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유 전의원은 “바로 통일이 논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대통령과 김정일 주석의 만남 자체가 크게 봐서는 통일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번 회담에서 북한쪽이 여러 면에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국민들과 정부도 눈앞의 효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꾸준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다만 “총선 3일전에 나온 정부의 회담합의 발표가 정치적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아 유감”이라고 했다.
유전의원은 경북성주출신으로 북한에 이산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64년 도쿄(東京)올림픽때 북한의 육상선수로 출전했던 신금단(辛琴丹)선수의 부녀상봉을 TV를 통해 지켜보고서 였다. 당시 대구시의원이던 유전의원은 곧장 동료 시의원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설치를 요구하는 2인 데모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이번 4·13총선에서 대구에서 무소속출마를 모색하다 지역정서의 벽에 막혀 포기한 유전의원은 “쉬는 동안 통일관련 책을 읽으며 박사과정에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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