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해저 대모험' 출간1면 톱/인류의 해저 대모험
인류의 해저 대모험
클로드 리포 지음, 이인철 옮김, 수수꽃다리 발행
온통 푸른색이었던 영화 ‘그랑 블루’. 자크와 엔조라는 두 주인공이 산소호흡기 없이 잠수 경쟁을 펼치다 끝내 ‘바다를 더 사랑한’ 엔조(장 마르크 바르)가 목숨을 잃고 마는 영화다. 차갑기만 한 그리스 난바다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가는 엔조의 돌고래 같은 순한 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바닷속은 어머니의 품이자 낭만.
이번에는 1930년 6월 6일 버뮤다 해역에서 인류 최초로 잠수기를 타고 수심 430m까지 내려갔던 윌리엄 비브의 증언. “그 곳은 온통 어둠이었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어둠이었다. 내면의 한 목소리가 내게 명령했다. ‘더 이상 내려가지 말라’고. 내 자신이 한없는 공간 속에 떠다니는 극히 미세한 원소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바닷속은 끝 간 데 없는 공포.
바다는 야누스였다. ‘그랑 블루’나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의 낭만적 공상의 대상이면서도, 인간이 자신의 영역에 범접하려는 순간에는 가차없이 목숨을 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기원전 325년 알렉산더대왕의 잠수통에서부터 현대 미국의 핵잠수함 ‘데이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해저 탐험의 역사는 이 바다에 대한 도전과 응징의 역사였다.
‘인류의 해저 대모험’은 이런 의미에서 독자를 결코 편한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게 놔두지 않는다. 어렸을 적 만화영화를 통해 막연하게 품었던 바닷속 생활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해저 1만㎙를 내려간 잠수함과 과학자들에 대한 찬사 등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바닷속 깊은 곳의 두려움과 인간의 더 할 나위 없는 나약함, 더디게 진행돼 온 해저탐험의 기술, 전쟁과 상업적 이윤의 위력 따위다.
프랑스 해양개발연구소 총감독관을 역임한 저자 클로드 리포는 우선 잠수복의 역사로 안내한다. 1926년 프랑스의 엔지니어 르프리외르가 3리터짜리 압축공기통과 마우스피스, 물갈퀴로 수심 8m에서 10분 동안 유영하기까지 인류는 무려 3,000여 년을 허비했다. 인간이 차디찬 바닷속으로 뛰어든 것은 ‘바다가 인간의 호기심을 채워줄 처녀지’여서가 아니라, ‘전쟁과, 난파선에 실린 값비싼 화물들을 건져내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에 대한 증빙자료로 저자가 내놓은 가장 자극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해군제독이었던 제앙 뒤 뷔에유가 1450년 남긴 기록이다. “잠수해서 숨을 쉬지 않고 오래 견딜 수 있도록 훈련받은 요원들을 몇 명 승선시켜야 한다. 이들은 전투가 계속될 때 큰 송곳을 갖고 물밑으로 가서 물이 사방에서 흘러들도록 배를 파손시킨다.”
인류가 잠수통이나 잠수선, 잠수함 등의 도움없이 바닷속을 내려갈 때 맞서야 했던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어떻게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느냐’였다. 책은 이 관점에서 3,000여 년의 잠수사(史)를 훑는다. 요약하면 이렇다.
‘150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양연구집’에서 공기 저장용 가죽부대를 이용해 숨을 쉴 수 있는, 문헌상 최초의 잠수복을 고안해냈다. 1772년에는 풀무를 사용해 잠수부 헬멧에 공기를 공급해주는 금속용기가 발명됐고, 1864년에는 압축공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하지만 ‘작은 시한폭탄’으로 불리며 일종의 마취증세를 일으켰던 공기속 질소를 대신해 보다 안전한 헬륨이 사용된 것은 20세기말이 되어서였다. 1938년 진 놀이라는 잠수부는 이 헬륨가스가 농축된 산소통을 등에 지고 120㎙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1947년 모리스 파르그는 헬륨가스 대신 기존 압축공기만을 이용, 진 놀의 기록을 깨려했으나 90㎙를 넘어서는 순간 즉사하고 말았다…’.
그러면 인간을 태운 잠수기구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해저 탐험의 동기와 발전과정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한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개하는 잠수기구의 역사는 놀랍고 극적이다.
구전이나 풍문이 아닌, 문헌에 의한 최초의 잠수기구는 1531년 구글리에모 다 로레나가 개발한 잠수종(鍾)이다. 말 그대로 밑바닥이 휑하니 뚫린 종모양의 이 기구안에 사람이 매달려, 압력차로 간신히 만들어진 기구 상부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형태다. 이후 1624년 노로 젓는 잠수선이 등장했고, 1721년에는 핼리혜성을 발견한 애드먼드 핼리가 고압으로 압축시킨 공기를 채운 잠수통을 사용해 바닷속 15㎙에서 1시간 15분을 버티는 기록을 세웠다.
실험은 계속됐다. 1948년 윌리엄 비브가 직경 1.34m의 강철로 만든 구형 잠수장치를 타고 1,360m까지 내려갔고, 1954년에는 오귀스트 피카르가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하강 4시간여 만에 마리아나 해구 1만 1,000m의 밑바닥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의 광경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희뿌연 침전물 층으로 뒤덮인 평평한 바닥에 안착했다. 동시에 작은 공 모양의 커다란 눈을 가진 근사한 물고기 한 마리가 석영으로 만든 유리창을 스쳐갔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산에 올라간다’는 힐러리 경의 명언이 떠올랐다.”
끝으로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하나. “깊은 바다 밑에서 힘든 일에 종사하는 용감한 잠수부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징성이나 낭만같은 것을 찾아볼 수는 없다. 아름다운 4월의 아침 햇빛을 받으며 바다 밑을 즐겁게 돌아다니는 것은 ‘해저 2만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것 하나만은 기억해두자. ‘항상 그랬듯이 바다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극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닫혀진 세계’라는 것을."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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