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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14) 수사기관 긴급체포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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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14) 수사기관 긴급체포 남용

입력
2000.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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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25)씨는 최근 밤늦게 집으로 불쑥 찾아온 수사관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긴급체포됐다. 관세법 위반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회사 사장 B씨와 공범관계라는 게 이유였다. A씨는 결국 연행 10시간만에 풀려났다. 그는 나중에야 사장 B씨가 범행을 계속 부인하고, 참고인인 자신마저 생업 때문에 소환에 불응하자 수사관들이 긴급체포했다는 사실을 변호인을 통해 알게 됐다.A씨는 “참고인의 진술을 얻기 위해 긴급체포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법치국가에서 신체의 자유를 이처럼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의자에 대한 긴급체포 제도가 검찰·경찰 등의 수사상 편의를 이유로 남발되면서 ‘합법’을 가장한 인권침해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긴급체포제도는 영장주의의 ‘예외제도’이지만, 이제는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가 도리어 예외적 상황이 되고 있는 실정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병확보를 위한 긴급체포. 현행 형사소송법은 증거인멸및 도주우려가 있는 경우 긴급체포토록 돼 있지만 수사기관은 자진출석해 순순히 조사를 받는 피의자까지도 대부분 긴급체포하고 있다.

마구잡이 긴급체포는 지난해 체포형식별 구속영장 청구건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는 6,771건인 반면, 현행범 체포는 3만748건이고, 긴급체포는 체포영장의 10배인 무려 6만6,659건이나 됐다.

소환요구 불응자에 대한 긴급체포 남발도 문제다. 지난 2월 검찰이 긴급체포하려다 실패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경우도 적잖은 논란을 빚었다. 정의원이 무려 23차례 출두요구를 묵살하는 등 공권력 집행을 방해해 긴급체포에 나섰다는 게 검찰의 해명이었지만, 애초부터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법집행을 시도했어야 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변호사는 “고소·고발 사건의 종결 등 수사상 편의는 물론 심지어는 끈질긴 민원제기에 대한 엄포나 보복차원에서 긴급체포하는 경우도 있다”며 “긴급 체포권한이 없는 사법경찰관이 긴급체포에 나서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긴급체포가 과거 임의동행 처럼 탈법적인 수사관행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면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긴급체포의 경우 법원에서 사후 구속영장 청구를 과감하게 기각, 인권침해 소지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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