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남긴 대차대조표는 뉴 밀레니엄 원년에 걸맞지 않게 영 초라하다. 새로운 정치문화에 대한 국민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여야의 소모적 물고뜯기로 정치불신이 심화했고, 끝간 데 없는 불법·탈법 시비로 선거판이 온통 얼룩졌다.이 와중에 지역의 표 나뉨 현상이 불식되기는 커녕 내부적으로 더 악화한 측면이 없지 않고, 무소속과 군소정당 후보들의 입지는 궤멸 상황으로 까지 내몰렸다.
국민과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정치권이 과거에 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상당히 자제했음에도 불구, 지역감정의 벽은 여전히 공고했음이 새삼 확인됐다.
금권·관권과 그에맞선 역(逆) 관권·금권 시비, 중앙당까지 나선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은 선거운동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면서 유권자의 판단을 흐렸다.
중앙선관위가 적발한 선거법 위반행위가 모두 2,834건으로 15대 때에 비해 무려 4배나 많다는 사실은 16대 총선의 혼탁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당한 선거 후유증을 예고한다. 야당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총선 이후 금권·관권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 조사권을 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선거사에 새 지평을 열기 위한 움직임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은 자생력 상실 단계에 이른 정치권을 향한 준열한 경고이자 물리력을 동원한 유권자 권리행사 선언이었다
병역·납세·전과 공개는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검증 기회를 넓혀 주었다. 제한적이긴 하나 정책대결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은 졸속 논란, 친소관계 등에 따른 편파시비, 불법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병역·납세·전과 공개도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책 대결 역시 건강한 논리 대결 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른 이전투구의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안정론과 견제론, 국부유출 및 국가부채 논쟁,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빚어진 국가(경제) 위기논란은 국민 볼모잡기 혹은 유권자 협박에 다름 아니었다.
선거전 막바지에 나온 남북정상 회담 합의발표가 신(新) 북풍 논쟁의 대상이 된 현실은 여야 주장의 진위와 상관없이 우리정치의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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