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꺼졌다던 산불이 되살아 나고 비상령 속에 계속 불이 나 강원도 산하가 온통 불바다가 됐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을 묻는 소리도 없으니 이렇게 영(令)이 안 선 나라가 또 어디 있나.일주일 동안 꺼지지 않은 산불이 삼척의 해안마을을 덮쳐 퇴로가 막힌 주민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대피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강릉에서는 불길이 시가지로 번져 시청과 법원·검찰청사를 위협해 한밤중에 비상동원된 직원들이 중요서류를 빼돌렸다.
일주일 동안 누적된 피해와 전대미문의 소동으로 삼척에서는 투표연기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경황도 없지만 주민등록증까지 타버린 사람이 많아 투표에 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을 안심시킬 강력한 예방대책과 철저한 수습책이 강구되지 않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이번 강원도 산불과 관련한 문책은 해당 시·군 부시장 부군수에 대한 형식적인 경고조치 뿐이었다.
산림행정과 자치행정을 책임진 중앙부처에서는 인력과 장비부족, 건조한 날씨, 주민들의 부주의만 탓할 뿐 책임을 통감하는 기색이 없다. 현지 사람들은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자치단체장들의 산불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약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임명제 시대에는 일정면적 이상의 산불피해가 인사조치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평소 예방과 진화에 많은 신경을 썼으나, 문책하는 사람이 없어지고부터는 하부 조직원들도 덩달아 해이해졌다는 것이다.
당국도 주민도 돈이 되는 개발과 이권에만 눈이 먼 지자체 제도의 폐해라 해도, 이대로는 안된다. 12일까지의 피해만 따져도 사상최악의 산불이라던 96년 고성산불의 두배를 넘어섰다. 실책과 나태의 정도에 따라 추상같이 책임을 물어 행정의 영을 세워야 한다.
입력시간 2000/04/12 17:30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