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한반도 평화구축의 거보를 내딛는다는 상징적 선언이나 합의를 회담의 산물로 그리고 있다. 아직 명칭이 붙여지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평양 평화선언’이나 ‘한반도 평화구축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한반도 평화선언은 말 그대로 남북 상호간 침략이나 무력사용을 영구히 포기,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 체제로 안착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91년 당시 정원식(鄭元植)총리와 북한 연형묵(延亨默)총리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골자와 다름없어 새로운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문서로만 존재했을 뿐 현실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평화선언에 사인한다면, 남북기본합의서 때와는 달리 평화구축의 실현에 가속력이 붙게될 게 분명하다.
주변 상황도 평화선언의 현실화에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후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최근에는 중국 러시아까지도 남북대화를 강력히 권하고 있고 북한도 대화가 외길임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선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화하느냐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 해답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다 나와있다”면서 “그 내용을 이행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실 남북기본합의서는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남북관계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포괄하는 ‘바이블’로 통한다.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 남북기본합의서의 3대 원칙을 비롯, 부속합의서, 공동위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운영 합의서를 그대로 준수하면 한반도 평화구축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순서와 완급의 문제는 남는다. 신뢰가 쌓이지도 않았는데 당장 남북한 군축부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월드컵 단일팀 구성논의, 문화예술공연단 교류 등이 이루어지고 남북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해빙무드가 완연해질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위협인 군사력의 감축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분단 55년만의 정상회담에서 모든 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면서 “평화선언으로 국내외를 향해 상징적 약속을 하고 그 이후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만큼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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