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 '살색안개', 반딧불이 '달을쏘다'지금 우리 연극은 고발한다. 이 시대, 인간 관계가 겪고 있는 미증유의 변화를. 사적 공간 또는 공적 공간을 가리지 않고 엄습해 오는 황폐함을. 극단 연우무대가 ‘살색안개’로 관계의 파국을 이야기하고, 극단 반딧불이는 ‘달을 쏘다’로 21세기 인간이 맞닦뜨린 허무의 극단을 들춰내 보인다.
빌딩내 사무실 방역 소독 시간이다. 분무된 살충제는 안개다. 자욱한 소독약 이 걷히기만을 기다리던 남녀 사원이 서로의 내부로 들어간다. 거기, 부대끼는 살들이 있었다. 소년시절, 그는 보았다. 다른 남자를 집의 옥탑방에 끌어들여 섹스를 나누는 어머니를.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그는 연상의 창녀와 관계를 맺고 만다. ‘살색안개’는 파멸적 몽환의 무대이다. 깊어만 가는 모자간의 의혹과 갈등. 감정을 삭이지 못하던 그는 정사중 여자를 목졸라 죽이고, 어머니는 욕정의 노예가 됐던 옥탑방에 불을 질러 자살한다. 연기로 자욱하게 뒤덮인 그 방은 소독약으로 뒤덮인 사무실로 치환된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파괴와 극단적인 파국의 모습이 그렇게 오버 랩 된다.
단 두 명의 배우가 역할 바꾸기, 역할 결합 등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 어머니와 아들, 창녀와 손님 등을 감당해 낸다. 거기에는 결국 둘은 서로에게, 의미없이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인 사물일 뿐이라는 연출 의도가 깔려 있다. 연출가 김종연씨는 “소통되지 못하고 자신만의 벽에 갇혀버린 병적인 심리상태, 콤플렉스로 가득 찬 이 시대의 정신병리를 그렸다”고 말한다.
‘머리통 상해 사건’등 영화적 어법을 무대에서 능숙히 구사해보인 그가 펼쳐 낼 정사장면 또한 관심이다. 고선웅 작, 정인겸 백지원 출연. 7일-5월 14일까지 연우소극장. 화-금 오후 7시 30분, 토·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월 쉼. (02)762-0010
이번에는 회사의 홍보실이다. 재기발랄함 속에서 음험한 관계와 욕망들이 꿈틀거리는 곳. 여직원을 유혹하고 남자직원은 몰아치는 실장, 부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비뇨기과를 찾는 과장과 신을 통해서만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그 부인. 위선적 풍경에 신분상승을 위해 비굴한 행동을 마다않는 사원, 자리 보전을 위해 상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사원, 아직은 순수를 간직한 풋내기 사원 등이 가세해 오늘날의 풍속화를 그려낸다. 극단 반딧불이의 ‘달을 쏘다’.
모두 11개의 에피소드가 교묘히 물고 물려가는 옴니버스식 전개이다. 육면체 등으로 단순화된 표현주의적 무대에 웃음과 슬픔의 상황들이 부조리하게 살포된다. 그룹 다스라기가 작곡해 들려주는 메탈이나 테크노풍의 소품 8곡이 분위기를 돋운다.
연출가 임경식(서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씨는 “단절, 자기상실, 나약함과 이기심 등 후기산업사회의 필연적 폐단을 회사라는 평범한 공간을 빌어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90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희곡작가 김윤미씨의 신작. 유태균 이성후 백경희 등 출연. 20일-5월 7일까지 문예회관소극장.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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