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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열전](9) 천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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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열전](9) 천정하

입력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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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다 뭔가를 덧댔으려니 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지난해 8월 ‘혜화동 1번지’에서 벌어졌던 공포연극제. ‘귀신의 똥’에서 만삭의 임부로 분했던 천정하(32). 그녀는 이 시대 연극배우라는 존재가 왜 유별나며, 나아가서는 반시대적인가를 뚜렷이 보여주는 듬직한 배우다.공연 도중 실제로 화약을 터뜨리기도 했던 격한 무대였다. 그 몸매에다 극중 상황까지 본 관객들은 설마했다. 그러나 실은 임신 9개월. 국내 최고 만삭 출연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안 주변의 연극인들은 “대단하다”, 나아가서는 “제 정신이냐”며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화약 폭발 대목에서 그녀는 뱃속의 꿈틀거림을 느껴야 했다.

정작 그녀는 “남편과 연출자의 열린 세계관 덕분”이라고 말했다. 연출자 박근형(38)씨가 ‘극단 76단’의 기획일을 하고 있던 남편 김현호(35)씨에게 출연해도 좋을지 넌저시 의중을 떠 봤다. 그렇게, 자신까지 합쳐 연극에 모든 것을 건 세 명의 공동 작품이었다.

이제 세상으로 날아 오른 젊은 배우. 사실 그녀는 턱이 짧고 각졌다는 외모 컴플렉스로, 어릴 적부터 은근히 마음 불편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연극이란 “적어도 맡은 역할에서만은 아름다와 질 수 있다”는 든든한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자유에의 확신.

고1 연극반에서 연극의 세계로 빠져든 그녀는 홍익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해서도 연극반에만 집중했다. 소품, 무대미술, 무대감독 등 궂은 일이었지만, 녀그는 자신을 철저히 긍정할 수 있었다. 집에서 하던 회사의 부도로 식구가 다 흩어지던 95년 그녀는 ‘연우무대’에 입단해 연극에 자신을 바짝 밀착시켰다.

97년 가을 ‘극단 76단’의 서울연극제 참가작 ‘지피족’에서 그는 내려꽂히는 핀 조명 아래, 상반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춤을 추는 댄서역을 했다. “예술도 외설도 아닌,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지난 4월1일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인기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그녀는 6개월 갓 지난 아이를 품에 안고 시상식장에 달려가 상을 받았다. 부푼 가슴을 누르며 그녀는 딸에게 속삭였다. “선아야, 엄마 상 탔다!” 앞서 2월 ‘한국연극’지에서 화제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연극인은 이제 딸에게, 그리고 배우로서의 자신에게 더욱 떳떳해진 느낌이다.

6월 29일부터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이자(李子)의 세월’에 출연한다. 무대서는 진실된 자신만을 표현해 왔다고 조용히 자부하는 그녀의 또 다른 시험대다. 빠듯한 살림 탓에, 아직 결혼식도 못 올렸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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