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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14) 계간지 '황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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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14) 계간지 '황해문화'

입력
2000.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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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 동안 우리의 중요한 교섭 상대는 미국, 일본 등 해양 세력이었다. 분단 상태에서 내전을 겪었고 중국이 북한의 가장 긴밀한 동맹국이었던 터라, 중국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금단의 땅이었다.지난 세기 80년대 말까지 우리는 이 나라를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 나라의 집권 정당 이름인 ‘중공(중국 공산당)’이라고 불렀다. 그 시절에 우리에게 열려 있는 바다는 동해·남해와 태평양이었을 뿐, 황해는 단절과 죽음의 바다였다.

그에 따라 황해의 중심 항구인 인천은 거의 폐항의 위기로까지 내몰리면서 구심력을 잃게 됐고, 서울에 대한 종속은 날로 심화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황해는 일찌기 동아시아의 지중해였다. 백제를 고대 그리스의 동아시아판으로 묘사하는 과장된 역사 이야기들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황해는 중국의 동해안과 한국의 서해안 그리고 일본의 규슈 지역을 연결하는 문명의 바다였다.

그 바다는 또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연결되며 한국을 동남아시아와 그 서쪽 지역으로 열어놓았다. 냉전이 끝나고 중국과의 수교가 이뤄져 두 나라 사이에 배가 오가게 되면서, 황해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인천도 제2의 개항기를 맞고 있다. 계간지 ‘황해 문화’는 세기의 전환과 함께 황해가 다시 우리 활동권으로 들어오는 것에 때맞춰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표어 아래 창간됐다.

‘황해문화’가 창간호를 낸 것은 1994년 겨울이고, 올 봄호로 26호를 채웠다. 지난 겨울호인 25호까지는 비매품으로 후원회원들이나 정기구독회원들에게만 배달되어 일반 독자들은 볼 수 없었지만, 26호부터는 일반 서점에도 진열되고 있다.

‘황해문화’의 창간 주체는 인천에 있는 새얼문화재단이다. 사회사업가 지용택씨가 세운 새얼문화재단은 1975년 노동자 자녀를 위한 장학회로 출발해서 지금은 7,000여 회원을 보듬고 있는 인천의 대표적 문화 재단으로 발전했다. 새얼문화 재단의 다양한 문화 사업은 인천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의 중흥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황해문화’의 창간도 인천 문화 부흥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을 배경으로 발간되는 잡지들은 ‘황해 문화’ 말고도 수두룩하다. 세계화의 한 측면은 지방화이고, 그래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세방화世方化)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는 만큼, 지역 잡지의 활성화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 잡지들은 편집 역량의 부족으로 우선 볼품이 없고 내용도 빈약하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모든 문화적 자원이 서울에 몰려 있다는 쓸쓸한 증거이기도 하다.

‘황해 문화’는 서울의 그런 문화 독점에 대한 한 눈부신 예외라고 할 만하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씨, 정치사회학자 서규환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그간 이 잡지의 편집을 책임져온 사람들의 성실함을 반영하듯, ‘황해 문화’는 서울에서 발간되는 어느 인문·사회 잡지 못지 않게 알차고 격조 있다.

정치·사회·인문 분야에 대한 평론·논문과 문학 창작물을 함께 싣는다는 점에서 ‘황해 문화’의 체제는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사회’ 또는 ‘당대비평’과 닮았다. 물론 ‘황해문화’는 문예지도 아니고, 또렷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빛깔을 띠고 있지도 않다. 소설가 이인화씨 같은 극보수적 필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사회학자 김진균씨나 정치학자 손호철씨 같은 좌파 필자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평소의 지향이 극보수적이거나 좌파적인 필자들이 다양하게 등장할 뿐이지, 그들이 ‘황해 문화’에 쓰는 글들이 극보수적이거나 좌파적인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황해 문화’는 역대 주간들의 개인적 성향보다는 조금 오른쪽에 자리잡은 온건한 보수 잡지라고 할 수 있겠다.

‘황해문화’의 정체성은 그런 정치적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천을 중심으로 한 황해 문화에 있다. 잡지는 매호 지역특집이나 서평난을 통해서 인천과 그 부근의 역사와 인물과 현안들을 조명하고 있고, 1999년 여름호의 특집 ‘한국 진보정치운동의 과제와 조봉암’ 같은해 가을호의 특집 ‘건국 50년, 현대 중국의 이해’처럼 큰 규모의 기획을 하기도 한다.

조봉암 특집이나 중국 특집은 물론 탄생 백주년이나 건국 50주년과 맞물려 있었지만, ‘황해문화’가 그것을 그렇게 크게 다룬 것은 조봉암이 강화도 사람이고 중국이 황해 문화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서해안 지역에 ‘황해 문화’ 잡지가 더 생겨날 때, 그리고 각 지역에 ‘황해 문화’ 잡지가 속속 만들어질 때, 우리들은 바람직한 방향의 글로컬라이제이션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창간사/ ‘황해문화’는 우선, 냉전과 분단의 고착 속에서 분해된 인천 지역의 구심을 광범한 연합 속에서 재건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우리는 지역적 토대 없는 사이비 보편주의의 횡행을 경계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보편성이 부족한 소박한 향토주의를 함께 극복하고자 한다.

해불양수(海不讓水). 인천은 하나의 지방으로 격절되기 어려운 운명을 타고난 도시다. 인천의 주민 구성은 전국적 분포를 가지고 있거니와 황해의 중심 항구로서 인천은 세계의 모든 인종과 어깨를 겯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은 방치하면 잡거성(雜居性)으로 전락하지만 협동적 중심과 결합하기만 하면 풍요로운 문명적 자산으로 전환될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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