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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를 인물중심으로 풀어쓴 '인물로 읽는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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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를 인물중심으로 풀어쓴 '인물로 읽는 고려사'

입력
2000.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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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지음/청아출판사 발행고려사 500년이 장막을 걷고 대중 속으로 들어온다. KBS가 거액을 쏟아부어 고려사 500년을 지속적으로 다룬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힌 가운데, 그 첫 드라마인 ‘태조 왕건’이 초반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고려사 재조명의 바람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고려는 그동안 ‘잃어버린 왕조’나 다름없었다. 조선왕조와 삼국시대의 역사는 쉽게 떠올리지만, 고려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역사의 스타’도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 집중되어 있을 뿐 고려시대 위인들은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그만큼 고려시대는 대중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려시대는 우리 역사를 세계에 알린 ‘세계화’의 왕조였으며, 중화 사대주의가 스며들기 전, 송·원·거란 등 대륙의 강대국과 함께 동아시아 역사를 지배하면서 독립국가의 기개를 지닌 나라였다. 거란, 왜구, 홍건적, 몽고 등으로부터 숱한 외침과 무신란 등 갖은 정변을 겪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던 고려시대는 고대사회와 단절하고 근세사회로 나아가는 들끓는 역사의 격동기였던 셈이다.

‘인물로 읽는 고려사’(청아출판사)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500년 고려사를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인물 중심으로 풀어 쓴 역사서다. 기존의 고려사 관련서들이 토지제도, 사회제도 등 학술적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거나 특정 분야에만 치중되어, 고려사 전체를 알기 쉽게 조망한 교양서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은 통일신라의 쇠퇴와 고려의 여명을 알린 견훤, 궁예, 왕건 등 후삼국 시대 세 영웅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영민한 실리주의자였던 견훤은 한때 역사를 호령했지만, 결국 아들들로부터 배신을 당해 경쟁자였던 왕건의 힘을 빌려 아들들에게 복수하는 어처구니 없는 영웅의 말로를 보인 인물이었다. 난세에 미륵불을 자처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궁예는 카리스마의 과잉으로 결국 부인과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앞으로 전개될 KBS ‘태조왕건’과 겹쳐서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부인 강비는 왕건의 옛 약혼자였지만, 어쩔 수 없이 실권자인 궁예와 결혼해 이후 궁예와 왕건관계의 열쇠를 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강비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전혀 없다. 강비와 궁예와 왕건의 삼각관계는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부분이다.

왕건의 정치적 포용력으로 고려왕조가 탄생하지만, 왕건은 29명의 후비와 25명의 왕자와 9명의 공주를 남겼다. 이 점은 호족연합 국가였던 고려 왕권의 불안정성을 예고하면서 극심한 근친혼 왕가의 탄생을 보여준다.

이 책은 왕건의 이야기에 이어 고려왕조의 개국공신 4인방(홍유, 배현겸, 신숭겸, 복지겸), 이밖에 왕조별로 중요한 인물 등을 평가했다. 왕규, 왕식렴, 쌍기, 최승로, 서희, 강감찬, 대각국사 의천, 이자겸, 김부식, 정중부, 최충헌, 최이와 최항, 신돈 등 고려사를 풍미한 인물들이다.

한국사를 전공했으며 ‘한국사 101장면’ ‘조선의 성풍속’ 등을 저술한 저자는 “우리 역사의 중간토막을 차지했던 고려가 바야흐로 새천년을 맞아 일부 연구자만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로 다가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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