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155명 언어의 숲 완성155명 문인들의 언어가 숲을 이룬다. 네티즌들이 거기에 더해 우리말의 산맥을 이어나간다. 김수영(金洙暎) 시인의 시 ‘풀’의 첫 행 ‘풀이 눕는다’를 씨앗글로 해서 문인 155명이 가꾸고 키운 언어의 숲이 완성됐다.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문학분과위원회(위원장 김상수·극작연출가)가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문학의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고 일반 대중에게 문학에의 폭넓은 참여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언어의 새벽 - 하이퍼텍스트와 문학’의 기획이다.
숲은 이렇게 가꿔졌다. 김수영 시인이 남긴 마지막 시 ‘풀‘의 첫 행 ‘풀이 눕는다’를 화두로 삼아 다섯 명의 문인이 각각 원고지 1장 분량 이내의 시구(詩句)나 글을 작성한다. 이 시구나 글에는 ‘풀이 눕는다’의 일부, 즉 한 단어나 음절 혹은 어절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
이 다섯 작가의 글을 화두로 삼아 다시 한 작가당 다섯 사람의 문인이 각각 별도의 시구 혹은 글을 작성한다. 이 글에도 화두로 삼은 글의 일부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나무가 가지를 치고 숲을 이뤄나가듯 언어의 숲이 가꿔진 것이다.
참여문인 155명은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로 원로와 신인의 구별없이 무작위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한 배열로 글쓰기에 참여했다. 소설가 이제하씨는 ‘그대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는 풀이/ 가난한 이들의 길을 열고’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글을 받아 소설가 현기영씨는 ‘인간이 죽어도 멸하지 않고, 한줌 흙으로써 풀포기를 키우고 그 풀들로써 존재를 이어가나니, 죽음의 두려움 앞에 이보다도 큰 위안이 어디 있으랴’고 사유를 전개했다. 다시 문학평론가 황도경씨는 ‘언제부턴가 기도가 되지 않는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간구하는 대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대신, 나는 지상의 위안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죽지 않은 내가 얻은 것은 마음 속 지옥이다’라며 현씨의 글에 나온 ‘죽음’과 ‘위안’ 두 단어를 포함해서 마지막 숲을 꾸몄다.
이렇게 완성된 155명 문인의 글은 4월19일 문학분과위원회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www.spiritandeye.com)에 공개된다. 일반 독자들은 이 홈페이지에서 문인들의 글에 이어 자신의 글로 다시 새로운 언어의 숲, 언어의 산맥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른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하이퍼텍스트가 무한히 이어지는 것. 김상수 위원장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씨앗글로 선택한 이유는 김시인이 전통을 자각한 가운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기 때문”이며 “4월 19일을 ‘언어의 새벽’을 여는 날로 선택한 이유도 4·19 정신처럼 이 기획이 한국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실험이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언어의 숲’은 사유와 상상의 무한한 개입이 가능한 문학 고유의 문자언어를 소리·동영상·그래픽을 포괄하며 역동적 예술생산의 도구로 부상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와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기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기획은 전통과 현재와 미래, 활자매체와 디지털문학이 본격적으로 교감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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