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녀가 대본을 쓰는 음악 프로그램의 분위기처럼. 시청자나 청취자는 고은경(32)이라는 이름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여의도 방송가에서 소문난 음악 프로그램 전문 작가이다. 유명 가수들은 그녀에게 콘서트 대본까지 부탁할 정도이다. 작가생활 11년, 한번의 외도없이 줄기차게 음악 프로그램의 글을 써왔다.“안녕하세요? 이소라예요”라고 시작하는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는 그녀가 빚어내는 글 속에서 음악이 진행된다. 진행자 이소라의 말 뿐 아니라 초대 가수들의 코멘트도 그녀의 손을 거친 것이다.
“글쓰는 것 자체가 좋았고 음악도 늘 즐겨 들었어요. ” 이화여대 체육학과를 나와 작가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한 대답이다. “체육학과 나와 방송작가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대학시절 학보나 학회지에 틈만 나면 글을 발표했다. 그런 준비가 있었기에 대학 4학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공모 공고를듣고 응모해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첫 일이 중요해요. 음악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니 지금까지 음악프로를 계속하게 됐어요”
‘별이…’ 에 메인작가로 활동한 지 8년째. 그 사이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KBS ‘이문세쇼’였다. 음악 프로그램 대본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별 차이가 없다. 단지 음악 프로그램 대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음악을 흡수할 수 있는 시청자들의 감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시청자나 청취자에게 보다 편하고 쉽게 음악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시청자층을 철저히 연구한다. PC통신이 매니아 수준인 그녀는 음악동호회 소식에서부터 신문, 심지어 유머란까지 뒤진다. 그녀가 쓰는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0-40대이기에 이들이 좋아하는 말투, 관심사, 취향 등을 파악해 글을 쓴다.
글을 쓸 때 빼놓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진행자와 초대 가수와의 장시간의 대화. 초대가수나 진행자와 만나 그들의 기분부터 가치관, 특성 등을 파악해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나 청취자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몇시간씩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녀는 시청률을 잡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대사를 결코 쓰지 않는다. “자신만의 독특한 글의 향기로 정체성을 키우는 것이 작가로서 생명력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한 외양과 달리 승부사 기질이 넘쳐흐른다. “외국 쇼를 보면 진행자의 코멘트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지요.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음악 프로그램의 글은 진행자에 의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진행자는 세 부류. 대본을 아예 무시하는 MC, 써준 것을 그대로 살려 전달하는 진행자, 그리고 대본을 바탕으로 훨씬 분위기를 잘 살려 전달하는 사람. “10년정도 함께 일한 이문세씨와 3년째 일하는 이소라씨가 저의 글을 가장 잘 소화합니다.”
일주일에 5일간 글을 쓰는 격무이지만 다른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피를 말리며 글을 쓰는 것과 달리 고은경은 아주 즐겁게 일을 한다. “일기를 쓰듯 편하게 대본을 쓰는 편입니다.” 그녀는 아침 8시에 여의도 집필실로 출근, 3시간 정도 작업을 한 뒤 라디오 대본을 넘긴다.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초대가수를 만나거나 음악을 듣는 것으로 일과를 마친다. 11년동안 방송을 펑크낼 수 없어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며 대본을 쓴 적도 많다.
비틀즈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애창곡은 늘 바뀐다. 신곡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결혼도 하고 싶고 음악과 관련된 드라마도 써보고 싶습니다.”
음악과 글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지상 최대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작가 고은경. /조영호기자
고은경이 대본을 집필하고 있는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약력
1967년 경기 가평 출생
1989년 MBC ‘별이 빛나는 밤에’작가 공모
1990년 이화여대 체육학과 졸업
1990년 ‘별이 빛나는 밤에’(MBC라디오·8년간 집필)
1996년 ‘이문세쇼’(KBS TV)
1997년 ‘이소라의 프로포즈’(KBS TV·집필중)
1998년 ‘두시의 데이트 이문세입니다’(MBC 라디오·집필중)
1999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작가상 수상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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