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 절반을 마피아가 지배러시아의 대내적 당면 제1 현안은 경제 회생이고 그 선결 과제는 이와 맞물려 있는 부패와 범죄의 척결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달 선거에 나서며 유권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 관료와 범죄조직의 불법적 시장 개입을 방어하는 것”이라며 “국민은 강도들에게 사업과 일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공언했다.
대선 캠페인에서는 머리가 여럿 달리고 목에 ‘도둑’ ‘강도’ ‘올리가르히(과두재벌)’ ‘관료’라고 쓰인 괴물을 망치로 내려치는 광고가 방송됐다.
사회 구석 구석에 만연된 부패와 ‘마피아’로 불리는 범죄 조직 등 사회악(惡)의 일소없이는 그의 ‘강한 러시아 건설’ 공약은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 공염불인 때문이다.
푸틴 당선자가 법의 지배(rule)도 아닌 법의 독재(dictatorship)를 강조한 것 역시 강력한 사회 구조 개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프랑스 파리2대학 부설 현대범죄연구소의 마리_크리스틴 뒤피가 1998년 발간한 ‘금융범죄’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활동의 40%와 금융기관의 절반은 마피아의 지배를 받고 있다. 러시아 내무부 보고로는 지난해 등록된 범죄건수가 모두 300만건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보면 1억5,000만 인구 중 50명에 1명은 범죄와 연관됐다는 얘기다.
흑자를 내면 세금으로 남는 것이 없고 오히려 적자를 내야 연방 보조금을 받는 ‘거꾸로 가는 기업 현실’이 현 러시아의 실상이다. 기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뇌물 전달 통로다. 기업의 안전 보장은 공권력이 아니라 마피아가 담당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내무 확대 간부회의는 “범죄가 러시아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관측통들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과 조직 범죄의 비리 구조에 대응할 푸틴의 전위 부대로 연방보안국(FSB)과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인물들에 주목하고 있다. FSB는 이미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e-메일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등 수사권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한 기업인은 “FSB의 조직범죄 대응 권한 강화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푸틴은 또 판·검사들의 공정한 사법 업무 집행을 유도하고 이들의 성취 동기를 제고하기 위해 급여 인상을 계획중이다. 조세 포탈범 적발률을 높이기 위해 관련 부처가 강화되고 있으며 납세자들에게 고유번호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는 푸틴이 범법자는 냉혹하게 처단하는 슬라브족의 ‘광역 싱가포르’를 꿈꾸고 있을 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푸틴과 주변 인물들의 기류에 대해 ‘법의 독재’가 아닌 ‘푸틴의 독재’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김병찬기자
bckim@hk.co.kr
입력시간 2000/03/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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