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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태석의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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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태석의 '태'

입력
200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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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대에서 제일 걱정은 들리느냐, 안 들리느냐에요. 이 큰 극장에서 무대의 힘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는 거지요” 27일 연습 뒤, 배우와 스태프를 모두 모아 벌이는 회의. 연출자 오태석씨의 말 하나하나에는 힘이 뻗쳐 난다.사랑채 같은 자신의 소극장 아룽구지가 아니다. 1974, 97년에도 국립극단과 작업했던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국립극장 대극장. 확장된 공간감, 객석으로부터 밀려드는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이번에 그는 아예 극장 구조를 뜯어 고쳤다. 국립극장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다. 국립극단의 ‘태(胎)’.

오케스트라 피트와 좌석 4열까지를 무대용 나무 판자로 덮어 무대화한다. 소극장 무대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조명을 위한 극장 개조는 한 술 더 뜬다. 흑·백·황색의 옷 빛깔을 살리기 위한 조명 등 400여개를 2, 3층 좌석 부분에다 설치해야 하는 것. 이렇게 해서 원래 좌석 1,500석 중 1층 일부와 2, 3층 전부 등 모두 600석이 무대를 위해 포기된다.

10년째 오씨 무대의 조명을 담당해 온 일본의 조명 디자이너 아이카와 마사자키(正相川門)가 28일 건너 와 합세했다. 그는 일본의 전통 연희 부토(舞道) 조명의 1인자이기도 하다.

‘태’는 한국적 미학의 구현에 골몰해 오는 것 처럼 보이던 오씨가 잔인한 정치의 세계로 시선을 돌린 결과. 암울한 정국의 1974년, 그는 택시 타고 가다 계엄령 선포의 소식을 들었다. 장준하와 백기완의 목에 칼을 들이대려는 정권의 의도를 읽은 그는 집에 돌아가 사육신의 기록을 찾아내 곰곰 옮겨 적었다. ‘태’는 시대에 대한 오태석 식 울분의 표현이다.

절도 있는 동작, 피를 토하는 듯한 대사 등 연기만 봐서는 도저히 그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장민호(신숙주 역). 오씨의 국립극단 데뷔작 ‘환절기’ 이래, 지금까지 오씨의 국립극장 무대에 단골로 출연해 온 배우다. “물귀신 마냥 꼭 끌고 들어가요. 그것도 힘든 것만 골라서.” 그러나 오태석 특유의 생략과 압축미에 반했다며 웃고 만다. 국립극단의 최고령 배우다. 73세.

이번 무대 또 하나의 관심은 권복순(44)의 열연. 멸문지화에 처해진 박팽년에게 핏덩어리 같은 자신의 자식을 주고는, 미쳐 버리는 이름도 없는 몸종이다. 1997년에도 같은 역으로 분했던 그의 각오가 남다르다. 바로 이번 ‘태’의 상징적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오씨는 “원래는 정치적 메타포가 자욱했죠. 이제는 몸종이 상징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여성성으로 보여주는 이번 ‘태’는 그래서 ‘오태석 버전 페미니즘’이 된다.

“앞으로 런 쓰루(전막 리허설)할 기회가 8번 있으니, 잘 해 봅시다.” 오씨는 고삐를 더 바싹 잡아 당긴다. 4월 1-9일 국립극장대극장. 월-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4시 7시 30분, 일 오후 4시. (02)2274-3507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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