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의지불구 지지세력과 결별 어려워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잔뼈가 굵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지난해 말 크렘린의 대리인으로 전격 등장한 이후 3개월여간 러시아 RTS 주가지수는 70% 가량 상승했다. 이는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의 기대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푸틴이 주창한 ‘강력한 러시아’의 필요충분 조건은 경제개혁이라는 지적처럼 러시아 경제는 부정부패와 빈곤으로 찌들어 있다.
1998년 8월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파산직전에 몰린 경제는 고유가와 산업생산 증가 등으로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선진국에 턱없이 못 미친다.
러시아 증권거래소 등록기업의 시가총액은 360억달러로 미국 야후의 3분의 1수준이다. 저조한 외국인투자, 낙후된 생산 설비, 미미한 연구개발투자 등은 석유수출 증가에 기인한 최근 회복세를 언제든지 꺾어 버릴 수 있다.
특히 내달로 예정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이 좌절될 경우 외국인 투자 유치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난맥상의 기저에는 보리스 옐친 시대를 좌지우지한 올리가르히(과두 재벌)가 존재하고, 푸틴 역시 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푸티노믹스’가 넘어야 할 산은 그만큼 많은 셈이다.
푸틴의 경제구상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총리취임당시 부패와 지하경제 척결을 통한 강력한 정부 확립 등을 정책목표로 제시, 정부 주도의 경제개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을 뿐이다.
푸틴은 일단 지난해 12·19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압승, 경제개혁의 발판은 마련했다. 친여 성향의 의원 수가 국가두마(하원)의 절반에 육박해 전임자에 비해 각종 개혁법안 추진이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푸틴이 개혁의 관건인 올리가르히의 청산이나 경제제도의 개선 등 근본적인 개혁에 나설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은 상태다. 푸틴의 선거운동본부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올리가르히가 권력과 분리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올리가르히의 거두로 꼽히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경우 옐친에 이어 푸틴의 최대 지지세력이다. 푸틴의 싱크탱크 ‘전력연구센터’는 가즈프롬이나 연합철강(UES) 등 재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결국 푸틴은 당분간 뜨거운 감자인 올리가르히 문제를 놓아둔 채 부패관리 처벌 등을 통한 원거리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푸틴이 가즈프롬 등의 사장을 자신의 주변인물로 교체, 강력한 통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경제개혁이나 러시아 재건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다만 푸틴이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부시장 시절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등 비교적 서방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어서 5월 취임이후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러시아를 움직이는 것은 크렘린이 아니다. 소련 해체와 사유화 과정에서 석유회사 등 국영기업을 헐값에 인수, 막대한 부를 챙긴 올리가르히다.
이들은 은행과 언론을 장악하며 당당한 권부로 부상했다. 1996년 옐친의 재선운동때 적극적인 모금활동을 펴면서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강화했다.
돈으로 정책은 물론 판결까지 바꿀 수 있는 사회, 급행료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관료를 만든 것도 이들이다. 때문에 올리가르히 해체없이는 외국인 투자유치나 러시아 재건이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 소련의 정유회사 대부분은 사유화 과정에서 올리가르히 손에 넘어갔다. 이들은 산하 은행을 통해 정부대출을 담보로 정유회사 주식을 헐값에 인수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정유회사중 하나인 로스프롬은 1억5,900만달러에 팔렸다. 지난해 4,450만톤의 원유를 생산한 이 회사의 가치는 80억달러에 이른다.
지주회사를 통해 이들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올리가르히는 장부조작으로 이익을 빼돌렸다.
유코스의 경우 원유를 시세보다 9배이상 낮은 배럴당 1.70달러에 모기업에 넘겼고, 이 모기업은 8억 달러의 이익을 챙겼다.
해당기업 주주는 물론 이 세수에 의존하는 지방정부의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렇게 확보된 자금은 선거자금 지원, 언론 등 여타 기업 인수 등에 활용돼 올리가르흐의 기반을 구축해 주었다. 올리가르히는 특히 자신들에 반대하는 기업이나 지방정부 대표들에 대한 테러도 주저하지 않았다.
푸틴의 지지세력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정유회사 시브네프트를 비롯해 국영방송 ORT 등 주요 언론사를 장악했고, 아에로플로트항공 등 대기업의 지배권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가안보위 부서기, 독립국가연합 서기를 지내며 개각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크렘린 행정실장, 제1부총리를 지낸 아나톨리 추바이스 역시 1998년 4월부터 연합전력(UES)사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블라디미르 푸틴 당선자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이들을 과감하게 퇴진시키는 개혁을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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