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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드러낸 재벌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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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드러낸 재벌의 문제들

입력
2000.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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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은 한마디로 우리 재벌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IMF체제 진입 이후 재벌 구조조정이 그토록 강조되고 국민적인 합의 하에 강력히 추진되었지만, 실질적인 재벌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황제 경영’ ‘총수 전횡’ ‘밀실 결정’ 등 재벌의 폐해가 개선은커녕 내부적으로 더욱 심화했음을 드러냈다.

지난 14일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의 인사 파동으로 시작된 현대 경영권 분쟁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13일만에 일단 막을 내린,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한편의 희극이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우리 재벌의 수준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정도를 넘어 분노와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기업에서 상속을 둘러싼 가족 구성원들간의 다툼은 있을 수 있고, 지금까지 종종 있어 왔지만 이번 현대의 경우는 다른 차원이다. 현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이고, 또 지금이 어느 때인가.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 등 뼈깎는 개혁없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도 상속 낙점을 주장하기 위해 총수의 서명이 들어 있는 회사 내부 서류와 육성 녹음까지 공개되어야 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아직도 현대를 한 개인의 소유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일반 주주들과 직원, 거래자와 금융기관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이같은 전근대적인 경영체제는 현대의 국제 신인도뿐만 아니라 한국의 신뢰도를 함께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한보 및 기아 사태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이번 현대 파동이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도 현대 경영권 분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부는 직접 개입할 성격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사회나 주총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명예회장의 서명이나 말 하나로 대표이사 회장 등을 바꾸는 것은 정부가 수없이 강조해온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재벌의 문제점이 아직 온존하다는 사실 때문에도 앞으로 재벌 개혁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정부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고, 재계도 자율적 추진을 내세울 수만은 없게 됐다.

하지만 자칫 정부의 일방적 추진으로 진정한 시장경제체제 확립이 더욱 멀어질까 걱정된다. 우선 시급한 것은 재벌들의 확고한 개혁의지지만, 정부도 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추진이라는 기본 방침을 더욱 철저히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기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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