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내 클라크, 수비크만(灣) 구(舊)미군기지 오염 청소를 둘러싼 필리핀과 미국 정부간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해온 미국측이 기지 주변의 오염물질을 청소할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자 필리핀 정부와 환경단체 등이 더욱 강하게 금전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최근 필리핀 외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은 기지 오염 청소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없으며, 단지 필리핀내 전반적인 환경문제를 다룰 전담반의 구성을 지지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도밍고 시아손 필리핀 외무장관이 23일 밝혔다.
이는 필리핀 외무부가 올해 초 미 국무부에 서한을 보내 미국 정부가 두 기지 주변에 버려진 독성 페기물 처리문제에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한데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다.
스탠리 로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도 최근 필리핀 방문하는 동안 “기지 오염 청소문제는 법적인 문제보다는 환경문제로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미국이)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현재로선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내 미군기지 오염문제는 미국으로부터 클라크공군기지를 이양받은 필리핀이 1997년 기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
필리핀 정부와 환경주의자들은 미군이 수십년간 기지를 사용하면서 땅에 파묻은 방사능 폐기물, 불발 포탄, 유독성 페기물로 토양과 물이 오염돼 인근 주민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미국이 오염물질 청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지난 2월에는 기지 주변의 마을에 살던 여섯살 난 여자아이가 백혈병으로 숨지기도 했다. 또 지금까지 클라크 기지주변에서만 70명이상이 암과 심장병으로 숨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 문제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오염물질 청소비용이 의외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로렌 레가르다 필리핀 상원의원이 미국의 한 용역회사를 통해 산정한 클라크, 수비크 두 기지 청소 비용은 10억달러에 이른다. 또 미군 기지가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어 필리핀을 계기로 각국이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에르네스토 마세다 미국주재 필리핀 대사는 필리핀 ABS-CBN 뉴스채널과의 회견에서 필리핀내 전 미군기지 오염청소는 ‘금전상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미국의회가 필리핀은 물론 전세계 미군기지의 오염청소에 필요한 자금을 배정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세다 대사는 미 의회가 필리핀만을 위해 예산을 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다른 모든 관련국들을 위해서 예산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기지 사용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해 한다는게 미군기지가 있는 세계 각국의 입장이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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