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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사람] 최종양 (주)이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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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사람] 최종양 (주)이랜드 대표

입력
2000.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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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열매가 열린다. 올해 농사가 좋았다고 내년에도 좋은 열매가 열릴 거라고는 믿어서는 안된다. 뿌리가 썩어있는 나무는 열매는 커녕 바람에 맥없이 쓰러지기 십상이다. 올해만 생각하지않고 내년을 걱정하는 농부는 우선 뿌리가 튼튼한 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 보잘 것 없는 나무도 뿌리만 튼튼하면 좋은 소출을 기대할 수 있다. 좋은 열매는 올해 농사를 말해주지만 튼튼한 뿌리는 내년 농사를 보장해준다. 그래서 뿌 리는 열매보다 중요하다.” L.에드빈슨, M.말론 공저 ‘지적자본’에서의류업체인 ㈜이랜드가 ‘뿌리’를 들여다보는데 성공, 주목을 받고 있다. 이랜드는 뿌리를 들여다 보고 뿌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표로 만들어 냈다. 국내 업체로는 처음이다. 지난 7일 발표한 ‘㈜이랜드의 지식자산표’가 바로 그것이다. 이랜드 최종양(崔鐘良·38)대표는 “기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식자산을 국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측정한데 대해 정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_지식자산이란 뭔가. 그게 왜 중요한가.

“지식자산은 기업의 무형자산을 말한다. 기업의 재산이라면 흔히 제품이나 부동산, 기계설비 등 눈에 보이는 것들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경영자와 종업원의 능력, 브랜드이미지, 고객만족도 등 보이지 않는 자산도 많다. 이런 무형자산들은 기업내에 축적된 정보(지식)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래서 지식자산, 혹은 지적자본으로 불리고 있다. 지식자산이 중요한 것은 기업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열매이고, 지식자산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기업경영자가 이 뿌리를 알고 경영전략을 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업의 순이익이나 매출규모 등 외형적인 것만 보고 투자하는 사람보다는 종업원의 능력, 경영자의 자질 등을 함께 고려해 투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올릴 것이다. 우리가 지식자산표를 만든 것은 효율적인 경영전략을 짜고 투자자들의 기업이해를 돕기위해서다.”

_이랜드의 지식자산은 어느 정도인 것으로 평가됐나.

“작년말 현재 5,243억원으로 나타났다. 작년도 재무제표에 기록된 유형자산1,762억원의 3배수준이다.”

_무형의 자산을 금액으로 환산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국내 다른 기업들도 지식자산 평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바로 그 점때문에 주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상당수 기업들이 수년전부터 지식자산을 평가, 발표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잡지인 포천에 따르면 주요 1,000개 기업중 450여개가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다. 우리는 미국서 개발된 기법을 우리 회사 실정에 맞게 활용했다.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1998년 9월부터 회사내 지식자산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 작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측정에 들어가 금년 2월말 현재의 지식자산을 측정한 것이 지난번에 발표한 지식자산표이다.”

_사실 이랜드가 의류회사로는 이름이 있다고는 하나 중소기업에 불과한데 굳이 이런 작업을 힘들여 할 필요가 있었나.

“그렇지 않다. 의류사업은 미래 패션의 변화를 미리 읽어내지 않으면 금세 도태되기 쉬운 업종이다. 다른 업종보다 미래예측수단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다. 또 우리가 먼저 이 일을 하면 국내 다른 기업에도 지적자산 측정이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미래학의 선구자인 토플러가 1990년대 초반에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은 건물과 기계, 상품의 재고가 많고 적음으로 측정되지 않고 축적된 지식의 양과 이를 효율적으로 분배, 적용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고 지적한 것 처럼 지식자산의 축적은 국가적으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그는 지난 번 발표후 국내 다른 기업에서는 물론 기획예산처와 지역난방공사 등 관공서와 공기업에서도 문의가 많다고 밝혔다. 이랜드는 이들이 원할 경우 회사로 불러 지식측정시스템을 시연해주고 있다.)

_지식자산표에는 종업원들에 역량에 대한 평가도 들어있다고 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나.

“지식자산 5,243억원중 약 1,300억원이 직원들의 가치였다. 그들이 가진 지식(정보)과 평균연령, 교육수준, 1인당 부가가치 등을 모두 합산한 수치다.

또 전에는 상·중·하 3가지로만 평가해왔던 개인별 능력도 객관화한 수치로 측정할 수 있었다. 분석결과 디자이너의 경우 최고 470배의 능력차이가 났다.

최고평가를 받은 디자이너는 37억6,300만원의 이익을 창출했지만 최저평가를 받은 사람은 800만원에 그쳤다. 생산관리 및 구매분야에서는 최고와 최저의 차이가 100배였다. 지난해에는 이를 토대로 0%에서 2,00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_그렇다면 기존의 인사고과와는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인사고과보다 사람을 더 쉽게 부려먹기 위한 도구라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

“직원역량 평가가 연봉산정 기준이 되므로 인사고과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또 사람을 더 부려먹기위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맞다. 하지만

기업을 포함, 모든 조직은 성과를 내기위한 것이다. 성과를 못내는 조직은 원하든 원치않든 도태된다. 정부기관도 성과를 못내면 국민이 세금낼 이유가 없다. 조직의 성과는 개인의 성과가 모인 것 아닌가. 사람을 더 부려먹는다는 말은 성과를 더 내도록 유도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_지난해 평가에서 최저점을 맞은 직원들에게는 어떤 조치가 있었나. 개인성과를 사내에 공개했을 때 반발은 없었나.

“반발이 우려됐지만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개인성과 측정방법을 정할 때 직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정한 룰에 따라 측정한 결과에 대해 반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시대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았다. 개인성과가 낮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성과가 낮았는가를 함께 검토하는 기회를 주고 ‘당신의 약점은 이러이러한 것이니 이런 점에 노력을 기울여라’는 구체적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맡게돼 성과가 떨어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사의 그런 노력으로 최근에는 470배의 격차가 100배 정도로 줄었다. 상·중·하 평가로는 처지는 직원의 능력을 이처럼 끌어올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_지식자산 측정이 회사 영업에 구체적 영향을 주었나.

“판매율이 10% 정도 늘었다.

_지식자산측정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IMF를 겪은 후 경기가 호전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_그것만은 아니다. 재작년 80억 적자에서 작년에는 160억원 흑자가 났다. 이중 30%정도는 지식자산을 측정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식자산표 작성은 한국 기업경영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렇다고 자부한다. 우선 요즘 누구나 강조하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재무제표는 일부 경리직원들만 작성함에 따라 분식작성이 가능하지만 지식자산표 작성에는 전 직원들이 참여하므로 그럴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 지식자산표의 역사

계 최초의 지식자산표는 1995년 스웨덴의 금융전문회사인 스칸디아AFS사에서 작성됐다. 이 회사 최고경영진은 서비스산업, 특히 지식집약적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자 건물 기계 재고 등 유형자산보다는 경영자와 종업원의 재능, 기업역량 관리능력, 고객과 회사와의 관계 등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991년 이 회사는 사내에 최초의 지적자산 측정부서를 설치해 이들 요소의 크기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년간은 그룹내 일부회사의 지적자산 측정에만 그쳤으나 측정 노하우가 점점 개선되고, 측정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자 1995년에는 측정대상을 그룹전체로 확대, 이 해 5월 세계최초의 종합적인 지적자산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지적자산의 가시화’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공개 즉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발간후 불과 몇개월 동안 500여개의 세계적 기업들이 이 보고서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어왔으며 지적자산에 관한 회의가 런던 브뤼셀 보스턴 토론토 등 금융산업 주요도시에서 잇달아 열렸다. 지금은 세계 첨단 450여 기업이 이 보고서를 매년 작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포철 신동아 등의 기업이 부분적으로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거나 준비중이다.

●최종양은 누구

최종양대표는 성균관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 이랜드에 입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10년만에 이사로 승진, 그룹내 최연소 임원승진기록을 남겼다. 이랜드그룹의 간판회사인 ㈜이랜드의 경영을 맡은 것은 1998년부터. 비록 이랜드가 내로라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34살에 임원승진, 36살에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면 무언가 특별한 재능이 있을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열심히 일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정도다. 1주일에 한 권을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많다. 지식자산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독서의 결과. 수년전 경영관련 서적을 읽다가 지식자산표에 대한 개념을 접하고는 ‘우리 회사에도 적용할만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대표의 지식이 국내 최초의 ‘지식자산표’를 탄생시킨 셈이다.

정숭호 편집국부국장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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