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나 돈에 대해 짐짓 초연한 체하는 선배들의 태도는 ‘00학번’에게는 이중성 내지 위선으로 비칠 뿐이다. 솔직하게 돈의 ‘효용성’을 인정한다.그렇다고 해서 돈에 대한 열망에 매몰된 것도 아니다. 돈은 그저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미학과 1학년 임은민(19)양은 “얼마전 본 ‘돈은 꽃이다’라는 광고문안이 정답인 것 같다”며 “적당한 꽃은 살아가는데 활력과 에너지를 주지만 많은 꽃을 그저 쥐고만 있으면 시들거나 썩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성균관대 어문학부 1학년 조영광·曺英光·18)고 돈에 매인 삶을 부정하지만 “능력대로 일하고 일한 만큼 버는 것이 온당하다”(한양대 전자전기공학부 1학년 김호준·金昊俊·18)며 부의 불평등에 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돈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만큼 ‘00학번’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꾀한다.
“경제적 독립이 인생의 독립과 이어진다”는 성균관대 인문사회계열 1학년 정성헌(鄭聖憲·18)군은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매일 저녁 5시간씩 일을 해 한달에 20만원을 번다. 정군은 “저녁시간을 희생해야 하고 몸도 고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기 위해 저축을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1학년 양진호(19)군과 같은 대학 인류학과 1학년 최방호(19)군도 “아직 부모님께 용돈을 타는 형편이지만 미래를 위해 쓸 돈이라면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음식점 종업원, 이벤트행사 사회 등 직종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용돈만큼은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한양대 사회과학부 1학년 최은경·崔銀京·18·여)는 것은 ‘00학번’의 성숙한 모습이다.
지출은 ‘나’를 위한 소비에 국한된다. 기분파처럼 화끈하게 쓰는 일은 바보 짓이다.
한양대 전자전기공학부 1학년 하태준(河泰俊·18)군은 “이틀에 한 번 꼴로 PC방에서 3,000원 씩 쓰는 것 외에는 꼭 필요한 데만 돈을 쓴다”며 “목돈을 모으기는 힘들겠지만 얼마전 만든 통장에 벌써 90만원을 저축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상경계열 1학년 김경원(金京元·19)군도 올해 안에 노란색 소형승용차를 사기 위해 얼마전부터 과외로 번 40만원을 모두 저축했다. 친구에게 술을 사는 등 불필요한 소비는 일절 끊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3학년 김모(24)씨는 “예전에는 아르바이트 월급 받으면 술 사주느라 절반 이상 날리는 등 거의 ‘공동소유제’였다”며 “‘00학번’신입생들은 자기만을 위해 돈을 써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연세대 학생상담소 정승진(鄭昇珍·38·여)씨는 “한달에 100여만원 이상의 용돈을 쓰며 과소비를 일삼는 ‘00학번’도 있다”며 “이렇게 정신이 나태한 친구들은 자신을 위해 저축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야무진 동기생들 사이에서 곧 도태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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