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조짐을 보이던 감기가 나흘쯤 콧물만 나오더니 오늘은 좀 심해진듯했다. 아프긴 했지만 버섯머리를 잘 매만지고 학교에 갔다. 오늘은 졸업사진 촬영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학교는 술렁였다.거울보고 머리 만지고 심지어 교실에서 드라이까지, 정말 소풍이라도 가는 듯한 분위기다. 여느 때 같으면 나도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며 그런 아이들 틈에 있을텐데 감기 때문에 통 의욕이 나질 않았다.
졸업사진은 무사히 찍었는데 계속 입이 마르고 점심시간이 되자 콧물도 안나왔다. 열나고 감기가 심해지면 콧물도 안나온다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요며칠 잠 온다고 잠자기 전에만 감기약을 먹었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점심시간에 공부 좀 해보려고 책을 폈는데 끝날 때까지 거의 같은 줄만 읽고 있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선생님 말씀도 아이들 웃는 소리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학교가 끝났다. 몸이 녹초가 됐지만 다음 주까지 학교에 낼 사진을 또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 친구를 끌고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사진관에 갔다.
이번에 그 사진관이 두번째인데 그곳 촬영사 아저씨는 좀 특이했다. 아파서 연신 찡그리고 기운없어 하는 나를 영문도 모르고 웃기려고 무척 애를 쓰고 계셨다.
“예쁘게 나와야지요. 얼굴은 작게…”“나이는 몇살이에요? 어려보이네. 남들 나이 먹을 때 어디 있었어요.” 반응도 없는 나와 다르게 아저씬 즐거우신 모양이었다. 아저씬 또 한마디 물어오셨다. “무슨 과에 가려고 해요?” “신문방송학과요.” 주저하지 않고 내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였다.
그래,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 난 바보같이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꿈을.
그리고 조금 힘들어진 생활에 푸념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내겐 꿈이 있었고 난 대학이 아닌 꿈을 향해 달려왔던 것을. 사진을 다 찍고 나가려던 내게 아저씨가 해주신 말씀. “언제 한 번 자신에게 물어봐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그리고 그걸 위해 내가 뭘하고 있는지…”
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머리는 좀 맑아지는 걸 느꼈다.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엔 꿈이, 희망이 담겨있었다. /서울 풍문여고3·양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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