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이미 수입된 영화의 홍보의 장으로 변질됐다고 생각하는가. 지명도 높은 영화를 저렴하게 한꺼번에 여러 편 감상하는 것이 영화제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전주영화제에 한번 기대를 걸어보자.4월 28일-5월 4일 열리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150여편 작품이 선정 발표됐다. ‘디지털 영화’ ‘대안 영화’ ‘아시아 인디영화’ 세 개념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했다. 지루한 ‘마니아 전용’ 리스트만은 아니다. 흥행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 관객의 입맛도 고려했다.
메인 프로그램은 시네마 스케이프 N-비전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 한국영화 등 4개 부문. 장편 영화 6-8편, 단편 영화 15편 가량이 상영될 한국영화는 아직 상영작이 결정되지 않았다. 아직 제작 중인 영화가 있기 때문.
시네마 스케이프(18편)에는 지난해 탄 영화제와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로망스’(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프랑스), 베니스 등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포르노그래픽 관계’(프레데릭 폰테인·벨기에) 등이 눈에 띈다. 둘 다 남녀 관계의 근원을 묻는 작품. 스릴러 로맨스 코미디가 결합한 ‘와일드 사이드’(도널드 캐멀‘영국)의 디렉터스 컷, ‘지금 죽고 싶은’(천이원·대만), ‘오디션’(미이케 다카시·일본 ) 등이 선정됐다.
디지털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 형식이 어떻게 영화 소프트와 조응하는 가를 감지할 수 있는 ‘N-비전’에는 일본 중국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만든 영화 18편이 선보인다. ‘프렌치 도그마’의 시발점이 된 ‘연인들’(장 마르크 바‘프랑스 ), 독창적인 디지털 영상을 보여온 존 아캄프라 감독의 ‘폭동’ ‘안개의 기억’, 존 조스트 감독의 ‘6개의 소품’등.
아시아 영화의 생산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을 주목할 만하다. 왕 취엔안의 ‘월식’, 지아 장커의 ‘샤오산의 귀가’등 중국 6세대 감독, 쳔 위신의 ‘러브 고고’, 훙훙의 ‘세 오렌지의 사랑’등 대만의 포스트 뉴웨이브 감독, 일본 츠치야 유타카의 ‘새로운 신-포스트 이데올로기’ 등 19편이 대기 중.
특별 프로그램인 ‘섹션 2000’은 오마주와 회고전 미드나잇 스페셜 시민영화로 구성되는데 ‘오마주’에는 상탈 에커만, 알렉산더 소쿠로프, 후 샤오시엔 등 세 거장의 대표작이 소개된다. 1970년대 미국 B급영화 대부인 ‘로저 코먼’의 ‘환각식물 대소동’ ‘흡혈식물 대소동’,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 7시간 18분에 달하는 헝가리 독일 스위스 합작영화 ‘사탄 탱고’등 영화광을 유혹하는 영화들이 대기 중이다. 이 정도 목록만으로도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군침을 흘릴 만하다. “관객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분산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정성일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영화들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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