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풍납토성 보존 재원마련 걸림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풍납토성 보존 재원마련 걸림돌

입력
2000.03.24 00:00
0 0

2000년 벽두, 고고학·역사학계를 넘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백제의 방어용 성으로만 여겨져 왔던 이곳에서 최근 기원 전후의 백제유물들이 쏟아지자, ‘한국판 폼페이의 발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풍납토성이 잃어버렸던 고도(古都), 한성 백제의 수도 위례성(慰禮城)으로 사실상 굳어진 가운데, 이제 어떻게 풍납토성을 보존하느냐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보존 방안

풍납토성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은 40여만평. 수도 서울의 역사를 500년에서 2000년으로 끌어올리는 역사적인 백제 유물들이 이곳 지하 4㎙ 아래에 대규모로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불행하게도 유적지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로 인해 1만여 가구, 4만여 시민들의 주거공간이 들어서 있다. 이들의 재산권 보전과 문화재 보존이라는 양립하는 문제를 풀 길은 아직 험난하다.

현재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그동안 중단됐다가 18일 재개된 이 지역내 경당연립 재건축 부지의 최종 발굴 결과가 나오는 5월께까지는 사태추이를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대세가 되고 있는 ‘보존’이란 원칙에 대한 이견은 없다.

다만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문제다. 관계기관은 현재 토성 내부 전체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정해 점진적으로 토지를 매입해 보존하는 방안 재건축에 따른 발굴 결과를 보고 중요 유구 출토 지역만 보존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중이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 스스로 “일부 출토 지역만 보존한다면, 보존의 의미 자체가 무색해진다”고 말했듯, 내부 전체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체계적인 발굴·보존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최몽룡 교수는 “국가적 자긍심을 키우고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을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키 위해서는,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체계적 발굴작업으로 원형에 가깝게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원문제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토성안 전주민의 재산권을 보상하는데 드는 총비용을 약 2조~3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장 시급한 경당 연립주택조합원의 보상비만 해도 300억원 정도. 문화재 보존에 인색한 예산, 특히나 매장문화재에 대해서는 예산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거금을 어디서 끌어오느냐를 두고 현재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화재청은 “1988년 담배소비세를 서울시에 넘길 때 문화재보존 등 8개 항목에 대해 서울시가 책임진다는 것이 전제였다”며 서울시가 상당한 비용을 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서울시는 “서울시 경우 이후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담배소비세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넘어가는 등 당시 상황과 지금은 많이 변했다”며 “국가유적지로 지정될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7대 3으로 재원을 분담하는 일반적인 경우를 따라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풍납토성 보존문제가 거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적 차원의 사업구도인 만큼 보다 상위 기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민들이 나선다

11일 KBS TV ‘일요스페셜’이 풍납토성 문제를 특집방영한 이후 인터넷 상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문화·시민단체들도 발벗고 나서면서 풍납토성 보존에 힘을 싣고 있다. ‘열린문화운동 시민연합’ 주축으로 문화연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50여개 문화·시민단체들이 모여 ‘풍납토성 보존 시민연대’(가칭) 를 결성키로 하고 준비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들은 풍납토성 보존을 위해 네티즌 운동에서부터 시작해 공청회, 시민서명, 모금운동을 펼침과 아울러, 문화재 보존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짚어나갈 계획이다.

학계의 부정과 침묵에도 불구하고 20여년 동안 풍납토성이 위례성이라고 줄곧 주장해오고 이번 역사적 발견의 일등공신인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풍납토성은 로마시대와 비슷한 시기의 유적이다. 로마 위에 당신은 아파트를 짓겠느냐”며 “대통령의 의지로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풍납토성 왜 무시당했나

일제시대 때도 사적이었던 풍납토성은 1963년 사적 재정비 때 성벽만 사적으로 지정되고, 내부는 풀려나 도시개발이 이뤄졌다. 유적지로서는 심각한 훼손이었다. 왜, 풍납토성은 무시당해왔는가?

‘진단학보’를 만든 한국사학의 원로 이병도(1896-1989) 박사, 그가 못을 박았다. 1939년 ‘진단학보’ 제 10호에 발표한 “풍납토성은 백제의 방어용 성인 사성(蛇城)”이란 그의 주장이 이후 사학계의 통설로 굳어졌다.

토성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온조가 수도를 확정하는 장면에서 “북쪽으로 한수를 띠처럼 두르고 있고, 남쪽으로는 기름진 평야가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막혀있고, 동쪽으로는 큰 산이 막아 있는” 땅이란 구절이 나오고, 또한 위례성이 평지성임을 보여주는 기록이 나오는 등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가능성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당시 일부에서도 제기됐던 이런 주장에 대해 이병도가 비판한 근거 중 하나가 놀랍게도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은 지금까지 학계를 지배해왔다. ‘삼국사기’가 삼국의 고대국가 건국을 고구려 BC 37년, 백제 BC 18년, 신라 BC 57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도 이것을 신화나 전설로 치부해 괄호로 묶어두고 실질적인 고대국가 기틀이 마련된 시점을 백제의 경우 3세기 중후반인 고이왕 때로 보고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런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에 대해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고대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삼국의 고대국가 형성 시기에 대한 그동안의 사학계 주장은 일본식민사학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1967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원룡박사가 풍납토성의 일부 시굴을 통해 나온 유물을 근거로, 풍납토성이 백제의 중요한 성이며, 삼국시대 개시 연대를 4세기로 잡은 것은 너무 늦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몇년 뒤 그 스스로 이 주장을 포기하고 만 것은 그만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깊숙하게 사학계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풍납토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기회를 놓쳐, 지금에서야 엄청난 대가를 치뤄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만 것이다.

풍납토성의 발굴은 백제 뿐 아니라 삼국의 고대국가 건국 시기를 앞당기고, 또한 당시 백제가 일본, 중국 등으로 왕성하게 진출했음을 시사하는 등 한국 고대사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고고학계는 과거의 입장에서 돌아섰지만, 아직 역사학계는 풍납토성의 발굴 앞에서 충격을 받고 침묵하고 있는 상태다.

/송용창기자

■풍납토성 역사적 의미

1980년대부터 줄기차게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위례성이라고 주장해왔던 선문대 이형구 교수가 1997년 토성 안 아파트 공사장에서 백제 기와 등을 대량으로 발견하면서 풍납토성은 학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드디어 지난해 6-9월 문화재청이 토성 일부를 절단해 3,4m 높이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전체 규모가 높이 9-15㎙, 폭 40㎙, 둘레 3.5㎞의 대규모 판축(板築)토성임을 밝혀냄에 따라, 이 성이 수십만명의 인원이 동원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고대국가의 왕성(王城)일 가능성을 높였다.

이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풍납토성내 아파트 공사장에서 기와장, 말머리뼈, ‘대부(大夫)’라는 글씨가 적힌 토기, 여(呂)자형 건물지 등 기원 전후로 추정되는 백제의 유물·유구(遺構)들이 다량 출토되고, 또한 국립 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나무·목탄의 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 것으로 지난 10일 밝혀짐에 따라 “백제 위례성이 어디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사실상 끝이 난 분위기다.

이는 위례성의 위치를 확인했다는 것 뿐 아니라 ‘삼국사기’에 적힌대로 1세기께 삼국의 고대국가가 완성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어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됐던 한국고대사를 복원하는 쾌거로 평가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