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일방적으로 ‘5개섬 통항질서’를 발표한 것은 군사적 위협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를 대내외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분석이다.‘5개섬 통항질서’는 지난해 9월2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서해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해상 군사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데 대한 후속조치 형식을 띠고 있다. 내용면으로도 그 경계선안에 폭 2마일의 항로 2개를 만들어준 뒤 그 안으로 통행하라는 것이 골자다.
실질적으로는 서해5도에 대해 미국의 관할권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지난해 주장보다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과 총선, 북미 미사일회담, 꽃게잡이 등 대내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카드를 내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 서해는 1, 2월 금어기가 끝나 꽃게잡이가 막 시작된 시점이다. 여기에다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해상통제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남한과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이번 ‘5개섬 통항질서’에서 미국이란 용어만을 사용한 점으로 미뤄 북미간 여러 회담 등에서 압박용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열린 북미회담이 결렬됐는데 이번 공포를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가기 수단과 북미미사일 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압박용 카드로 활용하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북한의 이번 선언은 남한보다는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의 베를린선언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앞으로의 남북대화를 겨냥, 우리측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제적인 원조를 받아 내려는 장기적인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북한 내부 단속에 활용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다. 북한은 체제내부에서는 지난해 6월 서해교전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번 발표를 통해 주민들에게“우리는 지금도 서해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이번 북한 조치가 실제로 남북간의 긴장고조를 가져올 지 여부는 더 신중히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황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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