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3년 '몰래보충수업'으로 대체22일 오후 광주 D고 2학년 교실.
6교시 정규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 하지만 학생들은 고스란히 책걸상에 묶여 있다. 7,8교시에 걸쳐 ‘특기적성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만 그럴듯하지 정규 수업시간에 배우던 국·영·수 교과서를 펴놓고 진도를 나가는 사실상의 보충수업 시간이다. 학생들의 말이 걸작이다. “영어 잘하는 게 특기고 수학이 적성인 셈이죠.”
이 학교만이 아니다. 충남 C고의 경우도 학생들은 학기초 ‘특기적성 희망조사서’에 무조건 ‘희망’표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희망하는 프로그램은 기재조차 못했다. 겉으로 특기적성교육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 조사였으니 당연했다. “밖에 나가서 절대로 보충수업 한다고 하면 안된다”는 담임교사의 주의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특기적성교육 참여비율은 전체의 31%에 불과했다. 더구나 몇몇 학생들이 원해도 인원수가 차지 않아 프로그램을 개설조차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학생들의 소질·적성을 계발하고 특기를 신장함으로써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높인다’는 거창한 취지로 도입한 특기적성교육. 현재의 고2년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2학년도부터 ‘특기·적성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활용하고 수능 성적은 최소한의 자격기준으로 사용하는’ 새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맞춰 시작됐건만 시행 3년째에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 빈 자리를‘몰래 보충수업’과 ‘학생들의 외면’이 대신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오히려 학부모들이 더 난리입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공부시키느라 정신 없는데 특기적성교육한다며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있지 않느냐고 항의합니다.”(대구 D고 K교사) “대학들이 도대체 어떤 잣대로 학생들을 뽑을지 모르는데 일단 국영수 공부부터 시켜야죠.”(서울 S고 학부모 C씨)
교육부가 애드벌룬만 띄워놓은 2002학년도 대입시 정책에 대해 대다수 학부모나 학생, 교사들은 회의적이다. 아예 믿지 않는다. ‘하나만 잘 해도 대학 갈 수 있다’‘특기적성 활동을 적극 반영한다’고 목청을 높여도 ‘설마…’라고 생각한다. 2002학년도 대입의 구체적인 요강을 서울대를 비록한 대학들이 아직 확정할 생각조차 않고 있는데다 ‘대학들이 정부의 정책을 얼마나 수용할 지 미지수’라는 공공연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결국 ‘교육부 지침 따라하는 학교만 바보’라며 특기적성교육 시간에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학생들은 “그 시간에 수능 공부나 하자”며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특기적성교육이 외면을 받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고 지적한다. 토플반, 영어회화반, 시사상식반 등 뻔한 프로그램 일색이라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을 살려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학생들이 이미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다양한 동아리활동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특기적성교육이 나가야 합니다.”서울 K고 연극반 동아리 지도교사의 지적이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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