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문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곧 3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비율로 보면 약 7% 수준이니까 10% 수준대의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로 보아서는 머지않아 선진국 수준에 접근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본격적인 고령화시대의 개막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 싶다.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나에게는 10여년 전 일본서 겪었던 몇가지 경험이 자주 머리에 떠오른다. 후지(富士)산을 등산하다 외길에서 만난 노부부는 그들보다 젊은 내게 먼저 지나가라면서 웃으며 길을 양보해주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때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좌석 양보받기를 사양하면서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공부나 일때문에 피곤할 것이라며 자리를 권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반해 어느 경우에나 나이 대접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외모나 내면적인 자기 관리의 소홀함에 대해서는 본인이나 주위에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듯한 우리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며칠전 지하철에서 우연히 목격한 광경은 이러한 우리 현실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한 기분을 금할 수 없었다. 60대 중반을 넘어선듯한, 그러나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걸음걸이나 얼굴이 너무나 건강해 보이는 남자 승객 한 사람이 차에 타서는 빈자리가 띄지 않자 초등학교 초년생으로 보이는 두 남매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억지로 한 아이를 옆으로 밀치면서 그 사이를 비집고 앉으려고 했다. 마침 옆에 같이 앉아있던 아이들의 할머니가 이를 보다못해 일어나 대신 자리를 양보하자 그 남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연약해 보이는 할머니의 자리를 빼앗은 채.
이제 우리 사회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존경받고 대접받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살리면서 빠른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노인문화의 정착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나에게는 최근 새로운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지하철을 탔지만 빈자리가 없으면 출입문쪽에 그대로 서서 가는 것이다. 머리가 희다는 죄(?)때문에 몇번인가 자리 양보를 받게 되면서 느껴야만 했던 씁쓸한 기분과 곤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호윤·서울 성동구 응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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