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세계 시의 날’이었다.지난해 제3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3월21일을 시의 날로 정한 후 그 첫 돌을 맞은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를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시 낭송회가 열렸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도 요사이 혼자 참 많은 시를 낭송하며 오랜만에 여유있고 풍요로운 나날을 보냈다.
우리 시인들은 요즘 참 좋은 시들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읽는 이들이 너무 적은 것 같다.
동물들도 과연 시를 쓸까? 시란 “자기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이나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는 어느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른다면 나는 이 세상 거의 모든 동물들이 다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봄이 되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저마다 목청을 가다듬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숫새들은 다 영락없는 서정시인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운율이나 자수가 일정한 형식을 따르는 정형시를 쓴다. 시인마다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종에 속하는 수컷들은 모두 똑같은 틀에 맞춰 시를 쓴다.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는 시라고 하기보다 음악이라 하는 편이 더 옳겠지만, 어차피 음악과 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아닌가. 풀벌레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은 단연 귀뚜라미일 것이다. 그들은 입으로 시를 읊는 것이 아니라 윗날개를 서로 비벼 사랑의 시를 긁는다. 귀뚜라미와 그리 멀지 않은 친척인 베짱이들은 날개의 가장자리를 뒷다리로 긁으며 역시 화려한 서정시를 쓴다. 같은 곤충계 시인인 매미는 좀 요란한 시를 쓰는 편이다. 귀뚜라미와 베짱이가 현악기를 사용한다면 매미는 타악기를 두드리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들은 관악기를 분다. 소리 주머니 가득 공기를 들이 마셨다가 서서히 내뿜으며 사랑을 연주한다. 관악기 중에서도 특히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와 가장 흡사하다. 매미도 그렇지만 개구리 등도 독주보다는 합주를 더 즐긴다. 보다 크고 넓게 알리기 위해서다.
냄새도 시어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나 자연계의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사실 다 냄새로 시를 풍긴다. 언뜻 보기에 소리에 비해 냄새가 단순한 느낌을 주지만, 그 냄새를 일으키는 물질의 화학구조를 들여다보면‘오감도’를 뺨칠 난해한 시들이 적지 않다.
인간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동물계의 시인들은 거의 예외없이 수컷들이다. 동물계에서 드물게 보는 여류 서정시인들은 대부분 암나방들이다. 절대 다수의 나방들에서는 특이하게도 암컷들이 냄새를 뿌리고 수컷들이 그들을 찾아다닌다. 그 여류시인들의 가냘픈 시를 아주 먼 곳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숫나방들은 모두 기가 막히게 잘 발달된 안테나들을 이고 다닌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거의 필연적으로 쇠퇴한다”고 개탄했던 19세기 영국의 사학자 머컬리 경의 말처럼 인간과 침팬지 등 대부분의 영장류들의 대화에선 시 구절을 찾기 어려워졌다. 간결한 언어로 그 깊은 속뜻을 전하던 낭만은 다 어디 가고,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어지러운 산문만 쏟아내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최재천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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