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안양 '신의손'불혹(不惑)의 나이는 새로운 도전을 머뭇거리게 한다. 대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시기인 까닭이다. 별명인 ‘신(神)의 손’이 실제 이름이 되어버린 벽안의 한국인 신의손(申宜孫). 프로축구단 안양 LG의 명수문장인 이 러시안은 나이 40에 한국사람으로, 구리를 본관으로 한 구리 신씨 원조로 다시 태어났다. 물론 운동선수로는 귀화 1호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도 올해로 9년째. 이제 한국말도 곧잘 한다. 아내(올가 노베르타브나·37)도 한국요리를 잘 만든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에게 한국은 생활 근거지 이상은 아니었다. 이제는 진짜 한국사람이 되어 한국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귀화한 지 20여일. 달라진 생활상을 엿보기 위해 경기 구리시의 보금자리를 찾아봤다. (아파트 응접실에는 가족 전체사진, 딸 올가 발레리애브나(17)와 아들 예브게니 발레리애비치(15)의 독사진, 록그룹 비틀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비싸보이지 않는 소파 등이 대스타답지 않게 서민층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지난 달 말 귀화한 지 이제 20여일이 지났습니다. 특히 올 시즌 프로축구 개막전인 20일 포항경기는 한국인으로서 데뷔무대이자 17개월만의 컴백무대로 의미가 깊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게다가 무실점으로 선방해 팀에 1-0의 승리까지 안겼습니다. 기분이 어땠습니까.
“축구는 나의 직업이기때문에 다른 요인에 의한 특별한 감정은 없었습니다. 4차례 정도 까다로운 슈팅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힘든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눈에 확 띄게 달라진 것이 한 가지 있긴합니다.
(뜸을 들이다) 유니폼 뒷면의 이름표기가 사리체프에서 ‘신의손’으로 바뀐 것입니다(웃음).” (신의손은 1998년 시즌이 끝난 이후 외국인 GK의 출장금지 규정에 묶혀 타의에 의해 은퇴했다가 이번 귀화를 계기로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귀화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내 자신에게나 가족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물론 내가 속한 LG축구 관계자들의 권유가 발단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천직으로 여겨온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러시아는 아시다시피 국내사정이 불안합니다.
내 직장문제도 러시아에서는 당연히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의 경우 9년간 한국에 살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딸과 아들은 한국에서 산 기간이 더 길어 러시아보다는 한국생활에 더 익숙합니다. 결국 자식의 미래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해 내린 결정입니다. 물론 아내도 전적으로 따라주었구요. 가족도 나중에 귀화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귀화시험은 어땠습니까.
“한국어를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40분에 20문항중 17개를 풀었는데 몇개가 맞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문화가 특히 어려웠는데 서울-부산의 고속도로 이름 등 지명문제가 까다로웠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험을 끝내고 한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도 역사를 잘 모르더군요(웃음).”
한국사람이 되기 전과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글쎄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아직까지 꼭 꼬집어 말할 것이 없네요. 평소 살던 그대로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축구관련 친구 이외에는 개인적으로 절친한 친구가 아직 없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만족스럽게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친구들과 즐겁게 쇼핑중입니다.”
-의례적인 질문입니다만,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다. 한국음식은 좋아합니까.
“어느 나라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찍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닙니까. 한국음식은 이름은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김치는 익숙합니다.
내 고향인 타지크(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북쪽에 위치)의 두샨베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때문에 맛은 다르지만 어릴 때 많이 접했습니다. 같은 고향태생인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축구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9년전 처음 한국땅을 밟았을 때 느낀 한국축구와 지금의 한국축구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94년까지는 점진적인 발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황선홍 고정운 홍명보 하석주 등 재능있는 선수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를 기점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리막길을 걸어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당시처럼 재능있는 선수들이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동국 안정환 이영표 등이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같은 문제점은 왜 생긴다고 봅니까.
“역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축구의) 교육체계가 잘못되어 있다고 봅니다. 재능있는 선수들이 스타로 성장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유럽같으면 20대 초반에 이미 스타플레이어로 올라서는데 비해 한국선수들은 대다수가 고교졸업후 프로무대에 직행하기보다는 대학에 진학, 대개 24세쯤에 프로에 진출해 적응기간을 갖다보면 28세쯤에 전성기를 맞습니다. 너무 늦은 나이입니다. 러시아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나이로는 41세가 되는데 체력에 문제는 없습니까.
“별다른 어려움은 없습니다. 2년 가까운 휴식은 나의 심신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7년동안 한국에서 뛰면서 쌓였던 경기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성과입니다.
또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니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때 체력이 저하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20대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컨디션도 최상입니다. 지금은 경기에 나가는 것이 마냥 즐겁습니다.”
앞으로 2년후면 월드컵이 열립니다. 개인적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2년후면 한국나이로 43세가 됩니다. (웃으며)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오직 내가 속한 클럽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뿐입니다. 언제 은퇴를 할 지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은퇴후에도 계속 한국에 살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도자생활도 해보고 싶습니다. /jknam@hk.co.kr·사진=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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