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체제와 독재 체제에서 시간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시간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훨씬 빠르게 흐른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국민에 의한 지배’라 할 수 있다.또한 민주주의란 제한된 기간동안의 통치 또는 한 선거와 다음 번 선거 사이에 특정 정당 또는 특정 정치인의 지배라고도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정치 지배의 한시성은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선출직의 임기는 나라마다 규정이 다르다. 한국의 대통령직처럼,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인의 재선출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내각제 정부에서는 이런 한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헬무트 콜 전 수상이 16년간이나 정부 수반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콜 전 수상은 뿐만 아니라 25년간 기독교민주연합(CDU)의 당수직을 맡았다. 이같은 연속성은 독일 민주체제의 장점인 정치적 안정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전후 독일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
스캔들은 과거 보수 여당이 외국 은행 구좌에 수백만 마르크를 조직적으로 그리고 불법적으로 은닉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독일 국민들은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제정한 법률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언론 검찰 의회 특별위원회에 의해 이 사건이 파헤쳐진 후 현재 독일에서는 관련 제도를 개혁하여 정치인의 불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열띤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안 중에는 정당 민주화의 촉진과 선출직 임기의 제한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 임기 단축은 사안이 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대통령의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을 마무리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지만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이 권력을 계속 잡고 있도록 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빈번하게 논의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방안은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한 정당이 이 대안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내각제가 3김에 의한 정치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획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순전한 억측이다. 그렇지만 새 천년에 최초로 실시되는 선거에서 3김이 다시 한 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억측이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 길지 않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간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로날드 마이나르두스 독일 나우만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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